좋은 남자, 좋은 연애



   "오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래. 오빠는 배처럼 떠나면 안돼" "이거 왜이래, 오빠 믿어." 과연 저 연인들은 지금도 잘 만나고 있을까? 소살리토에서, 예쁘고 젊은 커플을 보았다.


갈수록 연애가 어렵기만 하다. 나쁜남자는 매력적이고 착한남자는 매력이 없다고 한다.  차라리 백마탄 왕자에 대한 판타지가 있을 때가 나았던 것 같다. 좋은 남자, 좋은 연애는 도대체 과연 있기나 한걸까?


우울하다. 잡지의 연애 관련 칼럼, 연애 관련 게시판, 이제는 연애를 논하는 케이블TV의 프로그램까지 불안한 여자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다보면 이 세상에는 온통 내 뒤에서 바람을 피거나 내 마음을 좌지우지 컨트롤하는 나쁜 남자가 가득한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밀당의 고수가 되지 않으면 연애에서 손해보는 당사자가 될 거라고 권력의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연애란 도박판이라서, 우리가 여기서 타짜가 되지 않으면 실패라도 할 것처럼 겁을 먹는다. 지금 네가 내민 그게 장군인지, 아니면 차와 포를 다 내어주는 건 아닌지 재고 따져봤느냐고 돌려 묻는다. 친구들은 능력도 좋고 배경도 좋은 그런 남자, 내 마음을 한번에 녹일 것 같은 그런 매력적인 남자, 지금 당신이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그 남자가 과연 정말 좋은 남자가 맞냐고 확인하라고 한다.


연애는 어렵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나서서 나쁜 남자를 길들이는 방법은 이렇다느니, 제발 그런 연애의 판타지에서 깨어나라느니, 왜 그렇게 너는 주는 것밖에 못하냐며 딱하다고 한다. 제발 좀 영리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충고가 우리의 상황에도 적절히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스스로를 피해자의 논리 속에 가둬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약육강식의 연애라는 필드 위에 그는 여자를 사냥하는 하이에나로, 나는 맑은 눈망울을 하고 언제 잡혀먹힐지 모르는 사슴으로 말이다.


AB 1년 정도 연애했다. 솔직히 미인이라고 할 수 없었던, 게다가 여성스러운 애교라고는 결코 찾아보기 어려운 무덤덤하고 예민하지 못했던 A에게 B (어떤 의미에서) 실질적인 첫 남자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성격답게, 그리 소란스럽지 않게 연애를 평화롭게 유지하고 있던 어느날(나는 그녀가 친구들에게 연애 상담을 해오는 것도 보지 못했고, 그녀는 친구들의 연애관련 질문에도 그리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타입도 아니었다), B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했다. 2년 정도의 코스를 마치고 돌아올 것이라는 거였다. 둘 다 서른 살 즈음 되었을 때고, 집안형편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니  B A에게 청혼을 해서 함께 유학을 갈 만도 했다. 하지만 BA에게 청혼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헤어지려는 것도 아니었다. A보다도 오히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친구들이 흥분해서 말했다. “청혼을 안했어?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냥 갔다 오겠다는 거야? 네가 무슨 이 나이에 다시 군대간 남자 기다려야 하는거니? 말이 돼?”

, 케이블 TV의 마*사냥 이었다면 벌써 초록불 꺼버리고, 이건 끝난 관계라고 결론을 내렸을 거다. 하지만 A는 생각보다 더 멍청했다. “어차피 나는 여기 아직 직장이 있으니까 좀 아깝기도 하고, B도 공부에 집중을 해서 좋은 성적으로 돌아오고 싶대.” “? 관둬 관둬. 무슨 열녀 났니? 비전 없다 그녀석. 그 나이에 다들 결혼해서 안정감있게 공부하고 싶어하지 누가 혼자 타지에서 외로움에 떨며 공부하려고 하냐? A, 끝내, 그냥. 나중에 상처받지 말고. 네가 아직 연애를 잘 몰라서 그래.” 하지만 그녀를 말리는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A가 이 연애의 권력게임에서의 약자라고 여기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B는 나쁜 남자라는 룰, 논리 안에 쏙 하니 맞아 떨어졌다.


어쨌든 (우리에게) 영리하지 못한 A는 기다렸고, B는 우리들의 우려와 달리 다른데 한눈 팔지 않고 정말 공부만 열심히 하고 A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왜 다들 나더러 걱정하라고, 최악을 생각하라고, 남자친구를 닥달하고 사랑을 시험해보라고 한 걸까? 나는 괜찮은데 그 우려와 걱정이 날 더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어. 내가 별거 아니라서 B에게 인증을 받으라고. 난 사실 2년동안 이렇게 떨어져 지내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고, 애틋하게 지낼 것 같았는데, 다들 아니라고 하니까 정말 그런가하고 아주 잠깐 생각하기도 했어.” 


CD를 그의 가게에서 만났다. D는 신촌에서 바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한 밴드에서 기타도 치는 일과 취미를 밸런스있게 잘 운영할 줄 아는 남자였다. 무뚝뚝한 상남자의 매력이 있는 그 주변에는 여자들도 많이 따랐다. 그러나 그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보다, 그가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C를 더 불안하게 했다. 결국 그녀는 친구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D와 정면돌파를 하려 했다. "너 나랑 지금 사귀자는 거야, 말자는거야? 나를 좋아하기는 해?" 솔직한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D가 아직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녀의 자존심은 결국 두 달만에 헤어져!’를 먼저 외치도록 했지만, D에 대한 애정이 자존심보다 더 컸다. 실연 후 한달 만에 다시 만나자고 매달려 힘들게 D를 돌려세웠다. C는 이 나쁜 남자 D 때문에 여전히 괴로웠지만, ‘솔직한 대화를 매일 지속한다면 이번엔 DC에게 헤어져!’라고 외칠 것을 알았고 그건 진짜 끝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어렵사리 다시 연애를 지속하고 6개월쯤 지났을 때, 처음으로 DC를 질투하는 사건이 생겼다. 그 이후 D는 확연히 다른 남자가 됐다. “그 때 알았어. D는 그저 시간이 좀 필요했던 거야, 맘에 드는 여자와 친해질 시간. 나와 감정의 밀당을 하려던 게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여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나는 그걸 못참고 안달복달했던거지.” 그 이후 CD는 큰 싸움 한 번 없이 3년이라는 연애를 했고, 우리는 나쁜 남자의 조건을 갖출 뻔 했던 D가 실제로는 자상하고 좋은 애인이라는 걸 알았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나서도, 우리들은 D를 그리워했고, C에게 애인이 없는 기간에는 가끔 그의 바에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평화로운 무뚝뚝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대한다. 게다가 그에게 다음 공식 여자친구가 생기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생각해보면 극한 이기주의에 휩싸여서 자신 옆에 있는 여자친구의 마음 하나 챙겨주지 않는 나쁜 남자들, 꼭 피해야 할 바람둥이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둘러보면 주변에는 좋은 남자도, 좋은 연애도 있다. 연애란 결국 결혼이라는 최종선을 향해 달려가는 트랙 위의 달리기라고 생각하고, 그 남자가 나랑 과연 결혼까지 갈만한 인간인지 아닌지 따져보느라 자꾸 숨이 턱에 찼던 건 아닐까. 그래서 연애라는 달리기 자체도  즐기지 못한 채 결승선까지 들어가기 전에 지쳐 넘어진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는 게임이라는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나는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태도에서 여유로워진다면 적어도 연애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좋은 남자랑 잘 되서 잘 사귀고 있다는 '재미없는' 얘기는 연애 게시판이나, 연애 컬럼이나, 연애 프로그램엔 안나온다.


참고 : (마리끌레르 연애 칼럼으로 실렸던 내용입니다)


 

 


Posted by NYCbr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