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남편과 연애할 때, 그의 외국인 친구들이 가끔 '한국 아줌마 ajumma '라는 말을 비아냥대듯 사용하면 불쾌했었다. 그건 woman도 lady도 madame도 아닌 하나의 그룹명 고유어 ajumma.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창피'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빈자리를 향해 뛰어들고, 주말 코스트코에서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카트 중간을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와 먼저 내려가겠다고 싸우고 우기는 아줌마, 맞다. 그들의 불평이 틀리지 않았기에 더 불편한 단어였다. 
한국 사회의 여성으로 태어나, 집안에서 남편 자식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면서도 아등바등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아줌마에 대한 딸로서의 가슴 아픈 이해가 있었기에 가끔 '아줌마!'하고 소리지르고 싶어도 세 번 네 번 참고(뭐 대부분은 싸우면 '쪽팔려서'였겠지만) 봐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줌마, 이러시면 안됩니다'하고 나름대로 예의바르게 공중도덕을 지키시길 권하면서 우리는 함께 살아왔다. 
남성중심주의의 사회에서, 그리고 개발도상국으로서의 한국에서 가장 큰 희생을 했던 어머니 세대의 '뻔뻔한 행동'을 1%의 이해없이 ajumma라 부르며 낄낄대는 외국인이나 한국 남자들을 보면 항상 쏘아붙이게 된다. ajumma hair에 대해서는 더더욱(파마 값, 커트값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머리에 달라붙는 센 파마를 한 어머니들의 마음을 너희들이 알 턱이 있냐).
아마도 저 시위에 나서서 끔찍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아줌마들, (아저씨 대신 아줌마 부대를 내세웠다는게 참) 그분들 역시 우리 세대를 위해 나름대로 돈 아끼고 희생하며 여기까지 오신 분들일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믿고 있는 이상한 정의와 대의(?)가 얼마나 다른 가족과 세상을 상처주고 있을지 알면서도 '뻔뻔함'으로 지켜왔고 버텨왔듯 저 자리에 계신 것일테다.
난 저 분들이 어쩐지 지하철에서 가방던지고, 없는 자리를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으려고 했던, 그러나 우리가 '쪽팔려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바로 그 분들 같기도 해서 마음이 더욱 불편하다. 아마도 저기서 남의 자리 빼앗는 거, 줄 새치기 하는 거, 그거와 뭐가 다르랴 하고 계실지도 몰라 너무 속상하다. 외국인들이 낄낄대며 말한 그 부정적 의미의 'ajumma'들을 더이상 부정할 수 없어졌다는게 너무 분하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상처주는 행동이라는 것 이외에도 저분들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저렇게 훼손하고 계시다는 게 너무 슬프고 아프다.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서, 혹은 이 곳 한인 사회에서, 스스로 '창피함'이라는 단어 자체를 잊고 살아가고 계신 불쌍한 아주머니들이 내 줄을 새치기 하신다거나 없는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밀 때 말씀드려야겠다.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하고, 버럭. 우리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시며 창피함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셨을 그분들을 위해, 살짝 힌트를 드리는 거다. 어머니, 이제 창피함은 챙기셔도 됩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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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광복절이나 한글날 이럴때가 되면 괜히 애국심이 불끈하는 것 같다.


특히 한글 간판이나 한글로 된 안내서를 보면 남편의 팔을 마구 흔들며 기뻐하는 걸 보면 나도 천상 한국인은 한국인.



시카고에서 설렁탕 먹으러 갔다가 바로 옆에서 본 간판. 요즘에는 이런 글자체 한국에서도 거의 안 쓰는건데 어쩐지 묘한 옛 정취가 느껴져서 한컷. 그런데 여기가 어떤 장소인지 진짜 궁금하다. 정다움을 나누는 곳인데... 과연?



현대카드가 모마와 긴밀한 관계라서 그런지,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오디오를 받을 수도 있다. 한국어... 라는 말이 진짜 반가웠다.


환영합니다.


한국스타일 음식을 파는... 돼지. 글씨체가 예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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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친구들이 걱정한다. 미국가서 한국음식 먹는 것 너무 걱정된다고. 뉴욕에 찾아올 때마다 친구들이 전화로 묻는 몇가지 일들.

"혜영아, 고춧가루 있어? 된장은? 쥐포나 오징어 가지고 갈까?"

실제로 남편을 제외한 외국사람들은 내 김치냄새를 맡고 코를 쥘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선입견들은 다들 예상하듯 NO.

일단 미국에는, 특히 뉴욕에는 고춧가루, 된장, 간장, 쥐포, 오징어, 김치 다 있다. 물론 한국보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사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친구들이 고추장 된장을 들고 오다 깨질까봐, 쥐포 오징어 가지고 오다 깨끗한 옷에 냄새가 배서 미국을 걸어다니며 퀘퀘한 냄새를 풍길까봐 걱정이 된다. '그러니 친구들, 나는 다 괜찮으니 안가져와도 돼@@'


하지만 그 어느나라에 있는 음식이 한국산만큼 맛있겠나. 바지락같은 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클램으로 대체해야 하거나, 냉동바지락을 한국마트에서 사곤 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모님을 모시고 바지락칼국수집으로 향했다! 

작은 조개 속에서 작은 살코기를 골라먹는 그 기분을 즐기고 싶어서 말이다. 미국에는 해물칼국수집은 있어도, 바지락 칼국수는 없다(아니, 나는 아직 못찾았다).


무엇보다도 특히, 김치찌개.

물론 맛있는 김치도 많다. 나는 미국에서 유기농 유산균 김치가 있다고 해서, 그 김치를 구입해서 먹곤 하는데, 뭐가 됐든, 미국에서는 '나파 캐비지'라고 불리는 미국 배추는 한국 배추와는 확연이 다르다. (NAPA CABBAGE-는 나름대로 유명해졌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김치는 이제 오가닉 발효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에. 남편의 친구는 우리집에 놀러온 아침에, "혜영, 나 아침은 괜찮고, 하나 부탁해도 돼? 저 냉장고 안에 있는 김치 좀 먹어도 될까?" 하고 밥도 없이 김치만 우걱우걱 먹었다. "헤이, 남편친구, 김치는 샐러드가 아니라고! 짜다, 짜." ) 나파 캐비지는 한국 배추보다 두툼하고 흰 줄기부분이 억세다. 그래서 김치를 하고 신김치가 될 때도 그 부분은 사각사각. 그렇다보니 처음 미국에서 김치찌개를 만들었을 때, 물이 많이 나와서 멀건 김치국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제는 흰 줄기부분을 최대한 피해서 넣거나, 신김치도 아주 푹 익은 신김치만 넣어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역시 맛좋은 김치찌개맛은 잘 나오지를 않는다.


어머니는 한국에 돌아온 나에게 매일 김치찌개를 반찬처럼 주고 계신다.

한국산 돼지고기 삼겹살에 김치찌개! 광화문 할머니집보다 맛있는 엄마의 찌개. 더 좋은 건 내가 밥을 할 필요도,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다는 거. 친정엄마가 좋은게 이런 거구나 :)


어린시절부터 닭고기 소녀로 불렸던 나를 위해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신 닭백숙.



엄마가 앞으로 사진찍을 거면 미리 말하라고 말씀하심. "아니, 내가 제대로 꾸미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으면 어떡해!" 역시 전 잡지 에디터의 어머니다운 말씀. :)



그리고 현재까지 가장 좋아하는 마포의 을밀대를 방문하지 못했지만, 평양냉면을 사랑하는 나는 뉴욕에서 맛좋은 평양냉면 집을 아직 찾지 못했다.


지저분해보여서 죄송. 너무 배가 고파서 젓가락부터 넣고 먹다가, 문득 떠올라 찍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요즘은, 정신없이 먼저 먹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나서 어디든 길 위 노점상에서 서서 먹을 수 있었던 분식 떡볶이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일이다. 거기에 오뎅까지 ㅠㅠ.

며칠 전, 친한 언니를 만나 요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서촌 일대를 돌다가, 통인시장안에 위치하고 있는 '기름 떡볶이'를 찾아갔다.
80이 다 되어가시는 할머니라고 하는데, 혼자 순서대로 척척척척 이 힘든 노동을 해내고 계셨다. 이런 바쁜 일을 젊은이들보다 더 빨리 해내시는 걸 보니, 그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친한 언니의 말에 따르면, 사실 '기름 떡볶이'의 연원은 6.25 전쟁 속에 배가 고픈 아이들을 위해 서울로 피난온 어머니들이 급하게 기름 위에 떡을 넣고 볶아 먹었던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국물 떡볶이는 사실 이런 것에서 변형된 것인가보다. 하긴 떡볶이가, 볶이 아닌가.

나는 사실 이번에 처음 먹어봤는데, 기름이 입에서 도는 것이 고소하게 느껴졌다. 간장떡볶이는 짜기보다 달달한 맛이 일품.


자, 아마도, 며칠동안 나의 그리운 한국음식 타령은 계속 될 것 같다. 미국에 돌아가면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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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댁인 나는 지금 다시 서울 부모님 댁에 와있는 상태다. 잡지사에서 일 좀 하지 않겠냐고 해서 휭하니 남편을 뉴욕에 버려 두고  서울에 왔다. 뉴욕에서 생활하기 시작한지 몇달이나 됐다고  서울에 돌아오니 몸에 익숙해진 행동들이 이곳에 적응이 되려면 며칠이 걸릴 것 같다. (다행이다 발음이 꼬이지는 않아서. 몇몇 단어가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는건, 나이탓일거다. 아마 그럴거다.)


어학연수라도 잠시 한 사람들은 느끼는 바겠지만, 한국에서는 문 손잡이를 잡고 열어주는 사람도 없고, 엄청난 속도로 나를 치고 지나가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입 밖으로 나지막이 욕이 나올 것 같은 경험이 하루에도 여러번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들을 욕할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그 사람들을 치고 지나가면서 '죄송합니다'하고 이야기한 적 몇번이나 있었을까?


뉴욕 지하철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바로 그 입구에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뛰어서 갔는데 내 바로 앞에서 문이 닫히는 것이다. '어,어,어' 하는데, 앉아있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닫히는 문에다 두 손을 넣고 낑낑대며 다시 열어 주려고 했다. 물론, 기계로 닫으려고 하는 그 문을 아무리 그 남자의 힘이 장사라 한들 두 손으로 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결국 문은 닫혔고, 나는 눈인사로 고맙다는 말을 한 후 아쉽게 뒤돌았는데, 지하철 기사님이 다시 문을 열어주었다.

뭐 이쯤에서 내가 싱글이고 그 남자가 엄청 잘 생긴 남자였다면) 서로 '하이'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피 한잔 하자고 하고.... 뭐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아줌마의 상상이...(미국 남자들의 친절은 충분히 이런 일을 가능케 할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인들이 서로 부딪히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가에 관한 부분이다.

아마도 5시 45분쯤, 대부분의 미국인이 5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러시아워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의 지하철 안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앉아있을 수 있었는데, 문 입구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그리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없는데, 한 언니가 문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문이 여기 수백개가 되는데 당신 때문에 문이 안 닫히잖아!' 하고 큰 성량으로 윽박지르고 있었다. 지하철기사님이  문을 열어둔 채 움직이지 않고 5분정도를 서 있었으니 맘이 급한 그녀로서는 이 상황이 자꾸 타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동문이 닫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입구에 있는 두 여자는 타려는 사람에게 계속 타지 말라고 화를 냈고, 심지어 지하철 밖 안전선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밖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한국의 시루같은 지하철 상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아직도 충분히 사람들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있어보이는데, 저 언니들이 지나치게 화를 내는 것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고, 어쩌면 두 언니는 오늘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었을 것이다.
곧이어 문이 닫혔고, 지하철이 출발했는데, 지하철 기사님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지하철 교통이 막히고 있어서 계속 출발이 지연되는 점 죄송하다'고. 뭐가 됐든, 그 두 언니 덕분에 미국 출퇴근 족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어제 서울에서는 앞을 보지 않고 어디론가 향하던 한 남자가 커다란 물건으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내 얼굴을 분명히 보았는데, 얻어맞고 당황하는 나의 얼굴을 흘깃보더니 휙하니 가버리는 것이다. 정말 뒤따라가서 뭐라고 할까 하다가...

지하철에 사람이 많은 시간, 한 여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은 열심히 보다가 갑자기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크게 재채기를 했다. '어, 당신의 그 침... 다 어쩌라고...!!!!'


나도 한국을 사랑하고, 가끔은 남편을 놀리느라 '너네 나라 왜 이래?'하고 말하기도 하지만(특히 서비스가 늦고 불친절할 때). 가끔 '미안하다' '죄송하다'라는 말을 잊는 사람들, 자신이 편하자고 남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의 수가 한국에 좀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마디만 해주시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한마디만요?! :)



사람이 많을 수록,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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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에서 친구 가족이 놀러와서, 오후무렵 친구와 그녀의 남편, 아이들과 함께 타임스퀘어로 나섰다. 물론 수많은 관광객이 언제나처럼 그 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한국어도 곳곳에서 들렸지만, 오늘은 조금 더 특별한 날이었다. 한국은 이미 8월 16일이겠지만, 아직 8월 15일, 광복절인 이 곳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걸어다니거나, 8.15가 등에 적힌 태권도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군중 사이에서 멋진 장면을 발견했다. 




대한 독립 만세! (한국에서는 광복절에 뭘 기념하려는 건지, 시민에게 물대포나 쏘아댔지만, 이 곳은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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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과 화요일, 나는 분주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국드라마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 개의 드라마가 동시간대에 방영을 하는 관계로, 인터넷 '온에어'가 끊기지 않는 방송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한국드라마를 '다시보기'가 힘들다. 대부분 해외에서는 다시보기가 되지않는다는 방침때문에(아마도 한류의 영향으로 드라마 해외판권을 판매하기 위한 방침일 것이다),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몇몇 드라마 사이트를 이용하곤한다. 


한국의 시청률과 상관없이 요즘 내가 기다려 시청하는 몇몇 드라마로는, <상어> <무정도시> <황금의 제국> <너의목소리가 들려>가 있다. 그리고 그 중 세개의 드라마가 모두 월-화 미니시리즈로 포진이 되어, 월요일과 화요일 하루종일 인터넷에 붙어앉아 있어야 한다. 그러면 뉴욕의 오후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아쉽게도 미국시간으로 오늘(한국시간으로는 어제?), 두 드라마 <상어><무정도시>가 막을 내렸다.










여배우들

일단 나는 손예진이 가지고 있는 클래식한 미를 오래전부터 좋아해왔던 사람이다. 예전 잡지사 생활을 할 때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는데, 나는 그녀의  나이에 맞지 않는 안정감과 바른생활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한 그녀의 그러한 단아함은 오히려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었다. 예술가로서 틀에 맞지 않는 삐딱한 시선이나 태도가 재밌는 상상력을 자극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손예진은 너무 클래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어>를 보면, 그녀의 나이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애늙은이'(그녀가 스스로 인정했듯)의 감성을 눈빛으로 꼭꼭 눌러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난 작품들에서보다 훨씬 깊은 눈빛과 목소리를 담아낼 줄 안다. 손예진은 삐딱한 뒷골목 소녀역을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만약 한다고 하더라도 우아한 뒷골목 소녀가 될 것이다) 주인공의 가슴아픈 과거를 흔들리는 눈빛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아름다운' 배우가 된 것 같다. 나는 그녀가 로맨틱 코미디를 할 때보다 이렇게 정극을 표현할 때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꽤 오래전 인터뷰가 그녀의 홈페이지에 아직 남아있다. 나도 없는데 :)


마리끌레르 시절 손예진 인터뷰 :


http://www.msteam.co.kr/hamil/News/NewsView.asp?intnum=178&page=9&searchkind=&searchtext=





그리고 김유미. 나는 그녀를 눈여겨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녀가 보다 어리고 예뻤을 때 나온 드라마에서도, 그냥 예쁘장한 조연 정도로, (삼각관계에서 언제나 패배자가 되는 조금은 새침하고 똘똘한 여자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가 이렇게 강렬한 역할을 하게 될 줄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나는 이 <무정도시>에서 진정한 승자는 정경호가 아니라 김유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정경호의 팬들이 두려우니까. 아 그리고 사파리 아저씨도 괜찮았지.). 칼칼하게 뻗어나가는 목소리, 적당히 눈물과 웃음을 보일 줄 아는 절제된 감정 (이런 역할은 자칫하면 감정과잉으로 넘어가기 쉽다), 힘주지 않고 카리스마를 부리는 여걸 연기. 김유미가 이 다음 작품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녀가 한계단 올라설 수도 있을 것 같다. 괜히 신파 아침드라마 여주인공만 안한다면 말이다.






이요원은 참 신기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딱히 영화 욕심을 내지 않고, 별다른 큰 뉴스(스캔들이나 뭐 그런 것들--) 없이 언제나 톱 드라마의 톱 여배우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작품운이 좋은 거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굵직한 드라마의 주연을 시청률을 담보하는 작품을 주로 해왔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남자들을 거느리는(!) 캐릭터를 주로 해왔다는 사실은 그녀를 그저 '운좋은' 여배우로 평가할 수는 없게 만든다. 남자캐릭터들은 언제나 그녀를 중심으로 돌았다. 이번 <황금의 제국>도 마찬가지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재벌스토리 속에서, 그녀는 결코 패배자이거나 희생자이거나 누군가의 구원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앞서 술수를 파악하고 먼저 칼을 휘두르는 쪽이다.

손예진에게 가슴아린 눈빛이 있다면, 이요원에게는 아주 차분하고 냉혹하지는 않지만 차갑고 담담한 그런 눈빛이 있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버럭 화를 내지도 않으면서 부드럽고 온화하게 그러나 결단력 있는 화술을 선보일 줄 안다. 그녀의 깡마르고 길다란 몸조차 소위 '깡'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나는 그녀의 그런 드라마 선택이 캐릭터 선택이  좋다. 특히 이번 선택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여배우들 사이에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보영일 것이다. 그녀는 조금 '신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승무원 광고를 하면서 그 예쁜 얼굴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예쁨'이, 남에게 언제나 고분고분 잘 할 것 같은 '참한' 이미지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던 지난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하면서도 나는 그녀가 가진 구태의연한 '신파성'이 제대로 극복되지 못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에서 적당히 못되고 적당히 속물적인, 그래서 고분고분 참한 이미지를 벗어던진(물론 서영이도 그리 착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지분대고 질질대는 여자의 이미지를 완전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경쾌함과 당당한 이미지마저 가지게 된 이보영은 아주 매력적이다. 대강대강 대충대충 사회에 적응하며 비겁하게 살지만  때로 정의에 부르르 떠는 우리들과 그다지 다를바가 없다는 걸, 그녀의 캐릭터가 우리 스스로를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해준다는 걸, 드라마가 그리고 이보영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옆으로 돌아간 치마 지적에 창피해하지도, 대꾸도 하지않고 휙하니 치마를 돌려입는 장면은 나를 비롯한 수많은 나의 친구들 같았다.




그리고 드라마


스릴러 성격의 드라마들이 많았다는 건 여름이라는 시즌 탓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전반적으로 드라마들이 내포하고 있는 소재가 나를 매우 흥미롭게 했다. 기본적으로 권력과 폭력에 대한, 윗분들에 대한 강한 유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어>는 한국 역사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다. <상어>는 시민들을 쓰러뜨리고 학살하고도  자신의 신분을 세탁하고 여전히 떵떵거리고 계신 수 많은 윗분들, 그 역사에 대한 죄값을 제대로 묻기 위해 달리는 약한 사람들, 그리고 그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 속에서 여전히 신음하고 있는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상어>는 복수극이라는 얼굴 뒤에 숨은 한국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려고 한다. 여전히 대대손손 물려내려오고 있는 권력, 전혀 죄값을 치르지 않고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현재, 폭력의 역사를 말이다.

막판에 이르러 헐거워진 고리들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역사의식에 대해서,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어영부영 돈과 권력에 의해 묻히고 넘어가고 있는 우리의 과거가 결국현재 어떤 부메랑으로 날아오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오늘 함께 내린 <무정도시>도 마찬가지다. '마약조직에 있는 사람 가운데 반 이상이 언더커버야?'라는 반응,  드라마의 2/3쯤 이르러 어쩐지 결말을 다 알 것 같은 드라마 전개, 그리고 '정확하게 무얼 위해서?'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빠져있는 내용(나는 도대체 돈을 얻으려고 굳이 위험한 마약조직과 정치권 세력이 결탁했다...는 건 좀 어이없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재벌로부터 얼마나 많이 돈을 받으실텐데 굳이.. 마약은.. 뭐랄까...그 사이에  조금  더 치말한 내용이 있을 줄 알았다. 게다가 중간에 마치 정치권의 더 윗선과도 연결이 된 것처럼 계속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흠...뭐랄까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않고 흐지부지   넘어갔다는 생각? 때로 드라마가 실수하는 것들이 있다. 윗분들의 더러운 커넥션이라는 주제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스러운 내용들을 만들 때...이럴 때 정말 아쉽다. 조금만 조금만... 하는 생각이 든다)이 정말 정말 오랫만의 재밌는 느와르의 탄생을 조금 아쉽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과 친구와 적이 계속해서 엎치락 뒷치락하는 재미 등은 최근 드라마 속에서 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는 것은 크게 인정할 부분이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경찰조직, 검찰, 심지어 정치권 그리고 사학재단들의 문제성을 제기하고, 그들이 사실은 알고보면 더 큰 범죄조직이라는 설정은 확실히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쓰고보니 아쉬운 부분만 썼는데, 괜찮았기 때문에 더 아쉬웠다는 것이 나의 입장.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참 탄탄하게 잘 조직된 캐릭터 드라마이고 사회 드라마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치밀하게 준비해놓았다는 것이 결국 사회적인 메시지를 쉽게 녹아들게 하는 비결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그다지 긴장감있게 하는 종류의 내용이 아니다. 만약 그것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미국드라마와 비교해보면 다소 김빠질 수도 있는 소재일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가 저 정도의 사건을 가지고 법정에서 드라마틱한 변론을 한다는 게... 흠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의 에피소드가 재미난 캐릭터와 만나고,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인 은유로 연결되면 그것이 꽤 괜찮은 드라마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보면 일본 드라마 <시효경찰>이 많이 생각난다. 각각의 사건들은 긴장감보다는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황금의 제국>이다. 내용도 치밀하고, 사람들의 관계와 설정이 너무나 신선해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고수는 자신의 아버지 복수를 하겠다고 <상어>처럼 달려드는 대신, (언젠가 복수를 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돈을 많이 벌어 저 자식들 자리에 오르겠다고 독하게 덤벼든다. 그는 결코 신림동 판자촌에서 자란 좋은 나라 사람이 아니고, 그들의 나쁜 나라 방식을 배워 나쁜 나라 사람보다 더 독해진다. 그 어느 누구도 좋은 나라 사람이 아니고, 그 어느 누구도 나쁜 나라사람이 아니다. 고수, 손현주, 이요원 모두 자신의 권력을 위해 좋은 패와 나쁜 패를 번갈아 잡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은 마치 게임판 위의 말처럼 서로 친구가 됐다가, 서로 배반도 하면서 황금의 제국을 향해 달려간다. 이것은 마치 미국 드라마의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그 어느 주인공도 완벽하게 주인공이 아니고, 그 어느 조연도 완벽하게 조연이 아니다. 그들 서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저 열심히 달려갈 뿐이고, 그 사이에 피해자와 가해자, 권모술수의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우리는 캐릭터를 두고 '선한 악인'이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악역의 입체감에 대해서 말해왔다. 그러나 <황금의 제국>에는 '선한 악인' 조차 없다. 이익을 위해 달려가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이제 겨우 10회 달려왔으니... 아직 나를 몇주간 더 흥분 시킬 예정이다.


아 생각해보니 <스캔들>도 이 드라마들의 대열에 들어간다. 이 드라마 역시 90년대 이후 한국 역사와 권력, 그리고 권력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런 드라마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이, 그리고 작가들이 답답함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과연 저 윗분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마치 <너목들>의 서검사 아버지처럼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아니다 하고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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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국에 살 때만 해도, 외국인 기자 친구들(대부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유럽, 미국의 일간지 특파원들)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대기업들의 현실에 대해 언제나 부정적인 면을 시작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벌써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몇년 전 '장자연 사건'은 외국에서도 꽤 많이 다뤄진 사건이기도 했다. 적어도, 아시아 나라에서 일어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처럼 센세이셔널한 일로 읽혔을테니까. 그에 대해 그 프랑스 기자친구와 가끔씩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 역시 한국의 이상한 시스템과 구조 속에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는 것, 어린 친구들이 어른들의 돈놀이에 놀아나는 것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외국 언론의 가끔 객관성을 가장한 집요함은 진짜 현실을 자신들이 원하는 측면으로 과장하기도 하니까. 내가 화가났던 건, 서양인의 시각으로 동양의 기괴함을 다루려고 하는 그들의 의도 때문이었다. 어차피 한국 뉴스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그들의 잡지, 혹은 신문에는 '센세이션'함이 필수였을테니 더 그러했겠지.

여전히 소수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가지고 있는 권력은 너무나도 크고, 외국인들이 지적하듯, 천편일률적인 아이돌이 나왔다가 사라지기도 하며, 작은회사의 적은 자본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 아이돌을 양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린 소년 소녀들에 대한 '노동권'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여러가지 성장통을 겪으면서 아이돌 밴드들이 가지고 있던 내부적인 문제나 외부적인 시선은 조금씩 변화했다(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가고 있고 이를 부정할 수는 결코 없지만 말이다).  K-pop에 관심을 두지 않던 내가 여전히 2009년 최고의 노래는 그 어떤 인디 밴드의 노래가 아니라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듯이.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가 일하던 패션잡지에서는 배우들을 섭외하는것 이상으로 아이돌멤버를 섭외하기 위해 안달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한다, 처음으로 아이돌을 인터뷰하라는 지시가 편집장님으로부터 내려왔을 때, 우리 기자들끼리 얼마나 의아하게 생각했었는지. 우리가? 아이돌을?


심지어,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시스템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기도 했던 외국인 기자 친구조차 작년에는 'K-pop'에 대한 특집기사를 싣게 됐다. 소수의 취향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네가 생각하듯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언제나 소수의 취향이 다수의 취향보다 팬심이 오래가고,  때로는 비주류 문화가 '세련된' 취향으로 읽힐 가능성이 많음을 생각하면 이는 긍정적이다.

영국의 트렌드 세터인 <모노클>의 편집장은 이미 한국문화, 한국 음식, 그리고k-pop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고

지난해에는 미국의 인디 밴드를 다루는 유명한 웹매거진 <피치포크>에서조차, 언제나 독립 레이블을 위주로 했던 그들이 K-pop을 다루고 말았던 것이다.

K-pop은 적어도 색다른 취향을 갖기를 원하는 서양인들에게, 트렌드 좀 알아야 하는 힙스터들에게 그래도 알아두는 것이 좋은 장르가 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내가 꼭 즐기지 않더라도, 판타지 너드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와 책들을 꼬박꼬박 알아두듯이.

그래서 나는 소녀시대의 미국, 유럽 진출이나 싸이의 급작스런 인기가  '비주류'적인 취향을 건드렸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하곤 했다. 여기서 살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시아인이, 여기에 있는 백인, 혹은 흑인들의 문화사이를 파고들어 최고가 되는 것은, 여기서 나고 자라 최고의 기량을 뽐낸다고 해도 쉽지 않다. 그만큼 소수 인종이라는 것, 그만큼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것, 그런건 아마 할리우드 영화시장이나 이곳의 음악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어려운 문제가 된다. 예전 몇몇 한국 뮤지션들이 빌보드에 오르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잘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백인과 흑인이 쥐고 있는 이곳 문화의 주류 사회 속에서 1등을하겠다고 아등바등했기 때문이다. 꼭 빌보드만이 1등인가. 마치 뮤직뱅크에서 1위를 하면 그만인 한국사회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됐지만, 소녀시대의 경우에는, K-pop이 동남아시아를 점령하고, 일본을 장악한 후,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은 서양의 힙스터들이 '새로운 비주류 취향'으로 슬쩍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그들만의 작은 세계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녀시대는 그 작은 비주류 마니아들의 인기에 힘입어 미국으로 건너올 수 있게 됐고, 굳이 빌보드를 추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새로운 문화'로 읽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그 때 미국과 프랑스 쇼에 나온 '수영'은 너무 예뻐서 나도 깜짝 놀랐다. 동양의 밀라 쿠니스가 따로 없었다......!라는 개인적인 의견.그러나,, 소녀시대와 빌 머레이라는 이러한  기괴한 조합이라니... ㅋ)




싸이는 또 어떤가. 그 역시 캐치한 웃기는 뮤직비디오 하나로, 사람들의 비주류적 취향을 주류로 끌고 왔다. 젠틀맨이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세는 확실히 꺾여있다. 내 생각에 앞으로 싸이가 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유명한 래퍼나 가수와 함께하는 피처링 컨셉트로 가는 것이 옳지 않았나 그런 것도 생각해본다.


여하튼, 미국에서 K-pop은 주류로 읽히지는 않아도, 대중문화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서는 안되는 새로운 소재가 된 것은 사실이다.

오늘은 <The Atlantic>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미국에는 뉴키즈 온더 블록이나 백스트리트 보이즈 처럼 오래전 아이돌들이 다시 결합하여 공연도 하고 하면서 9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뉴키즈 온더 블록의 팬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를 지속하면서, 최근 있었던 그들의 공연을 직접 마련하는 저력까지 보였는데 게스트가 무려 보이즈 투 맨이었다. 중요한 것은 <The Atlantic>매거진에 나온 내용은,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한국의 K-pop밴드 신화를 본받아야 한다면서, 그렇게 여전히 자신들이 어린 아이돌인줄 알고 똑같이 90년대 짓이나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신화처럼, 자신들의 세대를 끌어안으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이 writer가 한국문화 팬인지, 아니면 영어를 엄청나게 잘해서 영어로 원고까지 쓰며 살고 있는 한국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내용이 상세하다. 심지어 한국의 SNL 을 들먹이기까지 한다.




http://www.theatlantic.com/entertainment/archive/2013/07/what-the-backstreet-boys-could-learn-from-k-pop/278036/


번역을 하면 이렇다.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K-POP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보이 밴드 신화는 그들이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어린척 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 이유는 그 나이를 함께 끌어안기 때문이다.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그들의 20번째 기념 앨범 <In a World Like This>를 다음주에 발매한다. 이것은 2009 <This is Us>가 나온 이후 첫번째 레코드이다. 멤버들은 평범한 수순의 홍보 활동을 펼쳐왔다. 컴백투어를 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아침 쇼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 그룹이 20년 가까이 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서 현재 플러그를 꽂고 팝뮤직을 듣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함께했다(늙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밴드의 유명세는 그 때 그랬던것과는 더이상 같을 수 없다. 백 스트리트의 지난 앨범 <This Is US는 미국 빌보드차트 200 9위로 데뷔했지만,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둔 두 개의 싱글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 그룹은 2011년 뉴키즈온더블록과 함께 이미 10년도 전에 변해버리고 만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를 이용하여 돈을 좀 벌었지만, 많은 새로운 팬을 노릴 수는 없었다.

백스트리트보이즈는 ‘As long as you love me’때 이후로 이미 얼마나 크게 음악시장이 변해버렸지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들이 어린 리스너들을 사로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The Wall Street Journal>인터뷰에서, 멤버 케빈 리처드슨은 얼마나 오늘날의 대중관객들이 백스트리트보이즈가 최고지점에 있을때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소셜미디어 때문에 아티스트로부터 새로운 컨텐트를 지속적으로 기대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운 팬들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작년의 보이그룹은 아마도 다시 적응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그들에게는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있다. 한국의 백스트리트보이즈에 해당하는 신화이다.

한국의 팝시장은 미국의 것에 비하여 한참 어리지만, 그 트렌드는 미국의 트렌드 : 덥스텝, 오토튠, 음악경쟁쇼, 등등을  반추하게 한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아주 격렬한 그룹액트에 훨씬 많이 매달려있다. 그것은  소년들과 소녀들로 이루어진 집합체(한국에서는 아이돌 그룹이라고 부른다)의 프로덕션을 노래와 댄스 그 이상의 것을  그들이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과학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K- pop이 음악적인 스타일에서 그리고 아티스트들에 있어서(음악경쟁 쇼 덕택에) 더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기 시작하였지만 아이돌 그룹은 여전히, 특히 돈이 있는 곳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에만, 61개의 그룹과 듀오가 데뷔를 했고, 그 중 33팀이 남자였다.

그래서 K-pop은 보이 밴드에 관해서는 하나 혹은 둘을 더 잘 알고 있다. 1998년으로 되돌아가서, SM엔터테인먼트가 신화라고 불리는 그룹을 탄생시켰다. 6명 멤버인 보이밴드는 2003년 레이블을 떠나기 전까지 SM엔터테인먼트의 이름 아래 4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고, 17개의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현재까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는 남자 음악 그룹이고, 최근 함께 15번째 기념일을 기억하기 위한 11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

그룹으로서, 신화는 백스트리트 보이즈 보다 다섯살이 어리지만, 그러나 그들의 한때 자국에서 최고의 보이밴드였던 이들이 멋진 성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에 있어서는, 그들이 닉카터&Co보다 몇년은 더 성숙한 것 같다.

신화의 모든 여섯 멤버들은 지금 30대이고, 육체적으로 해야하는 것, 그러니까 의무적으로 군대에 다녀오는 것들도 모두 마친 상태이다. 그룹으로 15년을 함께 하면서 그들은 지속적으로 노래를 발표하고, 투어를 했으며, 텔레비전에 출연해왔다. 그들의 2012년 앨범 <The Return>은 작년 8만장이 팔렸고, 이것은 4년만의 공백 이후 돌아온 그룹으로, 그것도 이미 과포화된 시장에서 다른 아티스트와 경쟁하면서도 한국에서 공고한 숫자를 기록한 것이었다. 현재 일부 멤버들은 연기를 하고, 다른 사람은 음악을 만들고, 어떤 이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이 모든 멤버들은 여전히 한국대중의 귀와 마음에 남아있는 신화이다.

신화가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도, 이 그룹의 지속가능함의 필수적인 부분은 현명한 자기인식 때문이다. 최근 SNL코리아의 에피소드에서, 신화는 호스트로서 박물관에서의 밤이라는 적절한 타이틀을 붙인 촌극에서 자기자신들을 스스로 찔러 웃음을 유발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훨씬 어린 버전을 연기하였는데, 말 그대로 지난 세대에서 온 유물로 기능하며,  방문객이 조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난 시대의 보이밴드 의상을 입고 나타난 신화는 어린 박물관방문객 앞에  형상으로  서서 그들이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룹의 아이덴티티 앞에서 혼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에피소드의 ‘Digital Short’에서 신화는 보험설계사 영업직원을 연기하며 아이돌 퇴직 보험 플랜이라 불리는 상픔을 판매한다. 패키지는 은퇴한 아이돌들이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는 팬들과 생일파티를 축하하고, 적극적인 아티스트에게 기습키스를 당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은퇴한 아이돌이 여전히 젊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스토커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내용은 다소 뻔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자기 겸양과 겸손은 신화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밴드 멤버들이 10대들에게 맞추어진 노래를 그나이에  습관적인 형태로 부르는 것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 그것은 그들이 곧 진짜로 그러했었지가 될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신화로부터 배울수 있는 것은, 그래서, 보이밴드에서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방법을 던져버리고 농담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최근 홍보 전략은, 그러나, 결코 그것을 돕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아주 진지하게 오래된 슬로건(“백스트리트가 돌아왔다!”)을 여전히 연주하면서 지속적으로 그들 자신과 데이트하고 있다.

 

(이후 3단락은 현재 잠이 와서 생략)


번역을 해놓고 보니, 이 글을 쓴 사람은 거의 한국문화전문가인듯하다. 이제 이렇게 자세한 내용의 글이, 잡지의 중요 섹션을 차지하게 된 것은 분명 지금 <백 스트리트 보이즈>가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뒤의 생략된 부분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느끼하게 구는지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K-POP을 띄워주는 분위기는, 분명 여전히 한국문화를 즐기려고 하는 일부 소수 마니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어쩐지 뿌듯해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예전에 신화의 김동완 인터뷰를 했을 때, 참 현실적인 아이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스란히 그렇게 원고에 쓴다고 썼는데, 모 블로그에서 잡지 인터뷰를 퍼다 놓고 "이 기자 언니는 우리 오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해서 참 상처 받았던 기억이... ㅎㅎ난다. 너희 오빠들은 이제 더이상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살고 있는 늠름한 성인들이란다....라고 말하고 싶었었다.
:)


이러나 저러나, 신화 SNL은 어디서 보지? 이곳에서는 정말 한국 TV를 어둠의 경로로 보는 수밖에 없는데.... 저 원고를 보니 더더욱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노래 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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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게 여기의 법도라도, 시부모님 이름을, 외국인이라고, 함부로 막 부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분들이랑 알고 지낸지 1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 집에 머물면서 친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부모님이잖아?
생각해보니까 이게 더 나쁘다. 나는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를 바로 옆에 두고 남편에게 '너네 아빠가 이게 좋다고 하셔' '너네 엄마가 이 선물을 나에게 주셨어' 라고 말하곤 했는데, 사람을 눈앞에 두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건 더 버릇없어 보일 것 같다.
결국 나는 다시 위스콘신에 방문했을 때 시아버지와 이름을 텄다. '밥, 설탕 좀 건네주실래요?' 한번 이름을 트고 나니까 좀 쉬워졌다. 그런데도, 시어머니 이름은 도통 부르기가 민망하다. 우리 시어머니야말로 이세상에서 가장 스위트한 사람인데. 나는 여전히 시어머니를 어려워하는 한국의 며느리인것일까? 



Posted by NYCbr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