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남자, 좋은 연애



   "오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래. 오빠는 배처럼 떠나면 안돼" "이거 왜이래, 오빠 믿어." 과연 저 연인들은 지금도 잘 만나고 있을까? 소살리토에서, 예쁘고 젊은 커플을 보았다.


갈수록 연애가 어렵기만 하다. 나쁜남자는 매력적이고 착한남자는 매력이 없다고 한다.  차라리 백마탄 왕자에 대한 판타지가 있을 때가 나았던 것 같다. 좋은 남자, 좋은 연애는 도대체 과연 있기나 한걸까?


우울하다. 잡지의 연애 관련 칼럼, 연애 관련 게시판, 이제는 연애를 논하는 케이블TV의 프로그램까지 불안한 여자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다보면 이 세상에는 온통 내 뒤에서 바람을 피거나 내 마음을 좌지우지 컨트롤하는 나쁜 남자가 가득한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밀당의 고수가 되지 않으면 연애에서 손해보는 당사자가 될 거라고 권력의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연애란 도박판이라서, 우리가 여기서 타짜가 되지 않으면 실패라도 할 것처럼 겁을 먹는다. 지금 네가 내민 그게 장군인지, 아니면 차와 포를 다 내어주는 건 아닌지 재고 따져봤느냐고 돌려 묻는다. 친구들은 능력도 좋고 배경도 좋은 그런 남자, 내 마음을 한번에 녹일 것 같은 그런 매력적인 남자, 지금 당신이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그 남자가 과연 정말 좋은 남자가 맞냐고 확인하라고 한다.


연애는 어렵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나서서 나쁜 남자를 길들이는 방법은 이렇다느니, 제발 그런 연애의 판타지에서 깨어나라느니, 왜 그렇게 너는 주는 것밖에 못하냐며 딱하다고 한다. 제발 좀 영리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충고가 우리의 상황에도 적절히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스스로를 피해자의 논리 속에 가둬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약육강식의 연애라는 필드 위에 그는 여자를 사냥하는 하이에나로, 나는 맑은 눈망울을 하고 언제 잡혀먹힐지 모르는 사슴으로 말이다.


AB 1년 정도 연애했다. 솔직히 미인이라고 할 수 없었던, 게다가 여성스러운 애교라고는 결코 찾아보기 어려운 무덤덤하고 예민하지 못했던 A에게 B (어떤 의미에서) 실질적인 첫 남자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성격답게, 그리 소란스럽지 않게 연애를 평화롭게 유지하고 있던 어느날(나는 그녀가 친구들에게 연애 상담을 해오는 것도 보지 못했고, 그녀는 친구들의 연애관련 질문에도 그리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타입도 아니었다), B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했다. 2년 정도의 코스를 마치고 돌아올 것이라는 거였다. 둘 다 서른 살 즈음 되었을 때고, 집안형편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니  B A에게 청혼을 해서 함께 유학을 갈 만도 했다. 하지만 BA에게 청혼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헤어지려는 것도 아니었다. A보다도 오히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친구들이 흥분해서 말했다. “청혼을 안했어?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냥 갔다 오겠다는 거야? 네가 무슨 이 나이에 다시 군대간 남자 기다려야 하는거니? 말이 돼?”

, 케이블 TV의 마*사냥 이었다면 벌써 초록불 꺼버리고, 이건 끝난 관계라고 결론을 내렸을 거다. 하지만 A는 생각보다 더 멍청했다. “어차피 나는 여기 아직 직장이 있으니까 좀 아깝기도 하고, B도 공부에 집중을 해서 좋은 성적으로 돌아오고 싶대.” “? 관둬 관둬. 무슨 열녀 났니? 비전 없다 그녀석. 그 나이에 다들 결혼해서 안정감있게 공부하고 싶어하지 누가 혼자 타지에서 외로움에 떨며 공부하려고 하냐? A, 끝내, 그냥. 나중에 상처받지 말고. 네가 아직 연애를 잘 몰라서 그래.” 하지만 그녀를 말리는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A가 이 연애의 권력게임에서의 약자라고 여기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B는 나쁜 남자라는 룰, 논리 안에 쏙 하니 맞아 떨어졌다.


어쨌든 (우리에게) 영리하지 못한 A는 기다렸고, B는 우리들의 우려와 달리 다른데 한눈 팔지 않고 정말 공부만 열심히 하고 A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왜 다들 나더러 걱정하라고, 최악을 생각하라고, 남자친구를 닥달하고 사랑을 시험해보라고 한 걸까? 나는 괜찮은데 그 우려와 걱정이 날 더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어. 내가 별거 아니라서 B에게 인증을 받으라고. 난 사실 2년동안 이렇게 떨어져 지내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고, 애틋하게 지낼 것 같았는데, 다들 아니라고 하니까 정말 그런가하고 아주 잠깐 생각하기도 했어.” 


CD를 그의 가게에서 만났다. D는 신촌에서 바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한 밴드에서 기타도 치는 일과 취미를 밸런스있게 잘 운영할 줄 아는 남자였다. 무뚝뚝한 상남자의 매력이 있는 그 주변에는 여자들도 많이 따랐다. 그러나 그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보다, 그가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C를 더 불안하게 했다. 결국 그녀는 친구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D와 정면돌파를 하려 했다. "너 나랑 지금 사귀자는 거야, 말자는거야? 나를 좋아하기는 해?" 솔직한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D가 아직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녀의 자존심은 결국 두 달만에 헤어져!’를 먼저 외치도록 했지만, D에 대한 애정이 자존심보다 더 컸다. 실연 후 한달 만에 다시 만나자고 매달려 힘들게 D를 돌려세웠다. C는 이 나쁜 남자 D 때문에 여전히 괴로웠지만, ‘솔직한 대화를 매일 지속한다면 이번엔 DC에게 헤어져!’라고 외칠 것을 알았고 그건 진짜 끝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어렵사리 다시 연애를 지속하고 6개월쯤 지났을 때, 처음으로 DC를 질투하는 사건이 생겼다. 그 이후 D는 확연히 다른 남자가 됐다. “그 때 알았어. D는 그저 시간이 좀 필요했던 거야, 맘에 드는 여자와 친해질 시간. 나와 감정의 밀당을 하려던 게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여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나는 그걸 못참고 안달복달했던거지.” 그 이후 CD는 큰 싸움 한 번 없이 3년이라는 연애를 했고, 우리는 나쁜 남자의 조건을 갖출 뻔 했던 D가 실제로는 자상하고 좋은 애인이라는 걸 알았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나서도, 우리들은 D를 그리워했고, C에게 애인이 없는 기간에는 가끔 그의 바에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평화로운 무뚝뚝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대한다. 게다가 그에게 다음 공식 여자친구가 생기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생각해보면 극한 이기주의에 휩싸여서 자신 옆에 있는 여자친구의 마음 하나 챙겨주지 않는 나쁜 남자들, 꼭 피해야 할 바람둥이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둘러보면 주변에는 좋은 남자도, 좋은 연애도 있다. 연애란 결국 결혼이라는 최종선을 향해 달려가는 트랙 위의 달리기라고 생각하고, 그 남자가 나랑 과연 결혼까지 갈만한 인간인지 아닌지 따져보느라 자꾸 숨이 턱에 찼던 건 아닐까. 그래서 연애라는 달리기 자체도  즐기지 못한 채 결승선까지 들어가기 전에 지쳐 넘어진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는 게임이라는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나는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태도에서 여유로워진다면 적어도 연애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좋은 남자랑 잘 되서 잘 사귀고 있다는 '재미없는' 얘기는 연애 게시판이나, 연애 컬럼이나, 연애 프로그램엔 안나온다.


참고 : (마리끌레르 연애 칼럼으로 실렸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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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는 나도 스포츠광팬이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가수나 배우를 좋아하는 것 만큼 스포츠 선수를 좋아하는 것이 하나의 성장과정이었다.


중학교때 한일 배구경기가 있었는데, 하종화 선수의 엄청난 활약으로 2:0으로 지고 있던 한국팀이 연속 세 세트를 내리 이겨 기적적인 승리를 거머쥐고 하루아침에 대중들에게 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그 경기를 끝까지 본 사람은 없었다. 그날  한밤에 해주던 중계가 갑자기 3세트 중간에 끝을 내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그 경기를 보다 만 반친구들 몇몇이 아침에 어찌나 호들갑을 떨었던지. 기적적인 승리도 그랬지만, 학교에 오자마자 하종화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그리고 일본의 나카가이치는 또 얼마나 멋진지 이야기꽃을 피웠고, 결국 우리는(당시에 우리는 인천의 여중생들이었다)하종화 선수를 보기 위해 마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버스를 타고 서울 장충체육관으로 주말마다 배구경기를 보러 가곤 했다.(정말 나도 한 때는 '빠순이'었다!) 학교의 농구팬들이었던 친구들과 배구선수가 멋지네, 농구선수가 멋지네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었고.

뿐인가, 고등학교 때는 LG트윈스의 전성기였는데(또 나는 이때 다시 서울로 이사와서 서울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야구장도 더 자주 갔다), 유지현, 서용빈, 김재현 세 명의 젊은 야구선수들에게 열광하며,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야간경기를 가곤했다(역시 야구 경기는 주말 경기가 아니라 야간경기가 제맛이다).

하지만, 스무살이 되고, 소개팅과 미팅을 하며 남자에 대한 판타지를 가질 필요가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나의 스포츠스타 사랑은 막을 내렸고, 가끔씩 남자친구들과 스포츠이야기가 나오면 장단을 맞출정도만 알게 됐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축구는 A매치만 보는 여자들, 아니면 월드컵만 보는 여자들, 나말고도 많지 않나?


하지만, 내가 남편과 함께 일요일마다 축구도 아니고 야구도 아니고 심지어 농구나 배구도 아닌, 미국의 풋볼을 보게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남편은 대단한 미식축구 광팬이라서, 결혼하고 미국에 오면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다. 일요일만큼은 TV채널의 자율권을 자신에게 달라고. 심지어는 시어머니조차 남편고향의 풋볼팀 티셔츠를 나에게 선물로 보내주셨다.

위스콘신 출신의 남편의 팀 이름은 그린베이 패커스(GreenBay Packers).



게다가 이 팀이 미국에서 상위에 드는 풋볼팀이라서, 나의 시가족들의 풋볼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가끔 남편이 "네가 제일 좋아하는 팀은 어디?" 하고 물으면 나는 반사적으로 "그린베이 패커스!"라고 대답해야 한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 하면 나는 남편을 놀려주느라 "톰 브래디!"라고 대답한다. (톰 브래디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팀 소속이고 유명한 슈퍼모델 지젤의 남편이다)


뭐가됐든 평일에는 한없이 성실한 남편이 주말이 되면 늘어지게 누워서 하루종일 이팀 저팀의 모든 경기를 보고, 컴퓨터까지 펼쳐놓고 다른 팀의 상황을 보고, 뉴욕이라 그린베이패커스 경기를 안해주면 실망하고, 때로는 각 팀의 프레스 컨퍼런스까지 다 봐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조금 이른 시간에는 차마 맥주는 못 마시고 계신 남편님


드디어 오후 네시가 넘어가면서


그린베이 패커스의 티셔츠를 입고


와이프가 일하느라 커피를 네잔째 들이키는 동안 옆에서 맥주를 열심히 드시고 계심.


그러다 문득 그 옆에서 열심히 한국 잡지사의 마감에 정신이 없는 나의 뻘건 눈을 발견하고는 미안했던지

"뉴욕댁, 너는 좋은 아내야, 나의 축구사랑을 이해하는 너는 최고." 하고 뜬금없는 멘트를 날린다.


그리고 한달 전 쯤 그린베이패커 팬들이 모이는 바를 집 바로 근처에서 발견하고 환호를 날렸던 그는, 일요일에 혼자 바에 나가서 50불을 술값으로 탕진하고 몇주째 스스로 자숙하며 집에서 TV 시청으로 만족하는 중.


딜린저스라는 바에 이런 G마크를 발견하고 환호.


하지만, 그렇다고 남편의 풋볼 사랑을 마냥 예뻐하는 와이프가 있어서는 안되기에, 나는 가끔씩 그를 놀리곤 한다.

"그린 컬러에 옐로 컬러라니. 너희는 그런 것도 모르니? 경기를 잘하려면 상대방을 제압하는 컬러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린에 옐로? 야, 그건 유치원 삐약삐약 컬러 아냐."

그럼 새삼스럽게 부르르 흥분하며 반격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하나의 재미다.

"원래 그린베이패커스의 컬러는 그린에 골드야. 옐로가 아니라고."

"뭐라구? 너 색약이야? 저게 무슨 골드니 옐로지."

"원래는 골드를 나타내려던 거라고. "

"그렇다고 치자. 어쨌든 그린에 골드, 서커스 컬러야?"

"그린에 골드! 이건 엄연히 우아하고 고상한 기개를 나타내는 컬러라고!"

"서커스 컬러, 아님, 뭐야, 치어리더 컬러? 아님, 어릿광대 컬러 아닌가?"

"아냐!!! 그냥 톰 브래디나 좋아해버려."


하지만, 어느새, 나 역시 남편과 풋볼을 이야기하는 좋은 아내(진짜다! 좋은 아내다!)가 되어버린 나. 그러나 축구의 국제경기만 보듯, 나도 풋볼은 수퍼볼만 보기로. 남편에게 이정도 숨쉴구멍은 만들어줘야, 주중에 다시 잔소리를 하지. :)

Posted by NYCbride

결혼 후, 연애원고가 형편없어졌다. 인정한다. 그래서 청탁이 잘 안 들어온다. 청탁이 들어와도 내가 저어한다. '제게 연애 더듬이가 사라져서요.' 그래도 어쩔수 없이 바쁘셨던지, 마리끌레르 선배가 급히 맡긴 원고, 선배의 부탁은 하나였다."얘야, 네가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가서 좀 써봐라."

예! 위 사진은 이 내용과 아무런 상관도 없음을 미리 인정하는 바입니다! :)




내게 너무 예쁜 지방남자


서울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사과는 대구에서, 감은 청도에서, 옥돔은 제주도에서,  그리고 괜찮은 상남자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공연을 하며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던 2류 인디밴드 전 남자친구는 말했다. 애교도 많고 수다도 많은 부산 여자들이 제일 좋다고. 그러면서 광주, 전주, 대구, 부산 등 지방의 사투리가 여성들의 어떤 섹시함을 부각시키는지 말도 안되는 논리를 지어내곤 했다. , 이게 지금 서울태생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가. 논리가 사라진 정치에서조차 지역감정을 없애자고 하는데, 너 지금 지역 감정 조장하자는 거냐. 그러나 정치가 언제나 거짓이듯, 솔직하게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연애의 지역감정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굳이 지도로 그림을 그려 고백해보자면, 곱게 자란 것 같은 강남 녀석들보다는 조금 세련미가 떨어지는 강북남자가, 그리고 서울 남자보다는 지방에서 올라온 남자가 조금 더 매력적이었다고 할까.


나같은 사람이야 태생적으로 강북에서 태어나 나보다 더 여우같은 강남남자, 서울남자들의 세련미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치고, 후배 H는 강남 출신에, 아마도 인생의 대부분을 하이힐을 끌어안고 살았음에 분명한 스타일을 갖추고 그 어떤 남자라도 굴복시킬 것 같은  또랑또랑한 친구인데 툭하면 지방남자 진국론을 펼치곤 했다. 그녀의 논리를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자들의 적당한 콤플렉스는 여자들의 삶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 A는 운전을 아주 잘 했다. 그와 데이트를 할 때면 레스토랑을 고르려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 지도 검색을 할 필요도 없었다. 압구정동 토박이인 그는 GPS 네비게이터가 없이도 강남 뒷골목 일방통행 길을 잘도 찾아 끔찍한 교통지옥을 벗어나는 법을 잘도 알았다. H의 생일 즈음에는 루이비통 백 대신 지난 번 데이트 때 그녀가 편집숍에서 눈도장만 찍어둔 마르지엘라 재킷을 사올 줄 알았고, 한국에 내한한 유명 DJ의 공연에 그녀를 데려가 주었다. 좋은 와인과 좋은 음식을 논할 줄 아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 뿐인가, 그는 아는 것이 더 많았다. A는 자동차를 세워두고 둘만의 은밀한 사생활을 만들수 있는 공간을 (그의 표현에 의하면) 운이 좋게도 잘 찾아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연애하고 있는 B는 운전을 아주 못한다. 급정거에 오른팔을 그녀의 가슴 앞으로 내밀어 막아주는 젠틀맨의 애티튜드도 없고,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아내는 재주도 없으며, 네비게이터의 도움을 받아도 곧잘 잘못된 길로 들어서곤 해서 그녀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언제나 동네를 빙빙 돌아야 했다. 그는 올림픽대로에서 한강다리 순서를 하나도 모르는 그런 남자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자취를 한 지 10. 덕분에 셔츠는 언제나 링클 프리 제품, 티셔츠는 언제나 구겨진채로 입었고.


어느모로보나 AB보다 멋졌다. 까다로운 H의 취향을 별 어려움없이 잘도 맞추었고, 오히려 H가 그의 세련미에 머쓱해질 정도였다. 깔끔한 매너와 태도로 H를 사로잡았고 몇달 동안 그녀를 들뜨게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 문화질이 그리 색다르지도, 재밌지도 않게 됐다고 했다. 그는 너무 매끈했다. 그의 재단 된 옷 만큼 재단된 선 안에서 사귀는 것 같았고, 뒷골목을 잘 아는 것만큼, 그녀 몰래 뒷길로 잘 새어나갈 것 같았다. 헤어지는 순간도 그랬다. AH도 서로 헤어지자고 하지 않았다. 석달 사귀는 동안 딱히 크게 싸운 것도 없었지만, 그냥 A는 연락을 뜸하게 하더니 어느 순간 끊어버렸다. “뭐랄까, 먼저 연락해서 너 나한테 화났니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의 매끈한 매너가 오히려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유지했어요. 생각해보면 그걸 의도하며 나를 재고 있던 기분이기도 하고. 그거, 원래 여자 전유물이었던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부산, 광주 등 지방도시 출신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말하자는 건 아니다. 아니, 촌스러운것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하자는 거다. 그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서울출신이 아닌 사람이 가진 일종의 문화적 콤플렉스가 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든다고 했다. 같이 공연을 가는 것도, 같이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을 가는 것도, 아는 척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그녀가 리드하도록 허용해주며 따라한다. “제가 쇼핑하는 것만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불평같은 것 잘 안하거든요. 무덤덤한 척 하다가도 남자들은 이래야 해하면서 남자로서의 책임감을 급작스럽게 떠올리는 것도 귀엽고요. 아직 지방에는 상남자가 남아있어요. 게다가 엄마없이 혼자 사는 법을 알고 있다는 점이 진짜 플러스죠. 외롭게 혼자 살아서 적당히 애정결핍을 가지고 있다는 건 투 플러스고요. 예전엔 남자친구가 왜 만나자고 안하나 안달했는데 B와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지만, 결정적일 때 테스토스테론을 확 풍긴다고 하고  전라도 남자는 사근사근 말도 많이 하고 자상하게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한다. 여하튼 한가지 확실한 건, 요즘 한국 여자들이 남자들의 날 것의 거친 매력에 목말라하고 있고 그래서 새끈한 서울 남자 보다 지방 남자가 좋다고 징징대는 것이다. 그래, 인정하자. 연애도 패션 트렌드와 비슷하다는 것을. 모던하고 재단이 잘 된 의상이 넘쳐나면 다시 빈티지 스타일의 꽃무늬 원피스가 그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자들이 예민하지 못하고 뭉툭하게 굴던 시절일 때는 조금 예민하게 여자를 좀 이해했으면 했는데, 이제 꽃미남과 세련된 남자들이 넘쳐나니까 무뚝뚝해도 남자란 말이야하는 올드스쿨 상남자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H나 몇몇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 지방에는 그런 남자들이 남아있나보다. H가 말했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안 비싸요. 세공을 해야 비싸지죠. 세공 까짓거 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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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오기 전, 한달간의 한국행을 계획하며 남편과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거의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일단 한국에서 결혼 한 후, 그는 학교를 졸업했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느라 24시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곧 신혼여행을 근 두달간 함께 다녔다.

뉴욕에 정착해서 그는 자신의 비즈니스 오픈을 위해 방 한칸을 홈 오피스로 꾸며 집에서 일을 하고 있고, 나 역시 거실에서 잡지사 일이나 이렇게 블로그질, 그리고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우거나 <브레이킹배드>를 아주 열심히 시청했던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우리는 근 반년을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보냈다. 참으로 진정한 신혼생활이었다. (큰 싸움 없이 잘 지냈으니, 서로를 칭찬할만도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콜'이 왔을 때, 나나 그나 슬프다, 아쉽다의 느낌보다는 '어떤 느낌일까?'의 호기심이 더 강했다. 게다가 21세기 테크놀러지 덕분에 나는 매일같이 화상채팅으로 그와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곤 하니...뭐 그닥.... 사람들이 '보고 싶겠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덜 사랑하는 걸까? ;)


게다가 요리를 못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 점심 저녁을 차렸던 나는(아침은 보통 내가 늦게 일어나서 패스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부모님 댁에 머물며 게으른 딸 역할로 돌아온 덕에 많은 시간을 나에게 재투자 할 수 있었다는 것!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하루 이틀, 가끔씩 집에서 쉬어줘야 했던 나는 지금 이렇게....





뜨개질 삼매경중.


재작년 크리스마스, 남편을 위해 목도리를 뜨기도 했지만, 대부분 급한 성질머리로 중도하차하곤 했었는데, 결혼이라는 안정감이 나를 조금 더 진득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완성하고 나서 오늘 다시 단주(www.danju.co.kr)이라는 뜨개질 스튜디오로 달려가서 한아름 뜨개실을 사오고 말았다(가격대는 조금 비싸지만, 실이 훌륭해서 만들고 나면 아주 흡족하다). 사오고 나서보니 내가 목도리를 네개 더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마음은 크리스마스까지 시부모님과 부모님을 위해 만들겠다... 인데. 이 비싼 실이 아까워서라도 다 떠야할텐데 말이다.


마치 남편없는 외로움을 허벅지에 바늘을 찔러가며..... 지내는 것 같아. 스스로 현모양처 롤 플레잉을 즐기고 있는 중. 추석까지 고고고!


Posted by NYCbride

나의 미국인 남편은 한국의 경영학 대학원을 2년간 다녔다. 아무래도 회사를 다니다 온 사람들이 많은 경영학 대학원이다보니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친구들과 외국인친구들이 결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남편이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와서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웨딩홀이 그런 곳인지 몰랐어! 결혼할 사람들의 결혼식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 같아! 아무도 결혼식에 참여하지 않고 다들 뒤에서 떠들고, 정신도 없고. 끝나자마자 밥 먹고 집에 가는 거였어? 한국 결혼식은 비즈니스 하러 가는 것 같아 ㅠㅠ"


남동생이 회관을 빌려 결혼할 때, 실질적으로(본래는 2시간 반 정도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시간은) 대여할 수 있는 총 시간은 1시간 반이었다. 그러니까, 30분 만에 빨리 끝내야 그 다음 사진 찍고, 청소하고 나면 바로 다른 커플이 결혼할 수 있었던 거다.  외국인 친구들의 한국인 결혼식으로 느낀 충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인 우리조차 그런 결혼식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문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행복한 파티를 벌일 수 있는 그런 결혼식에는 너무 큰 돈이 든다는 것. 서울의 유명한 하우스웨딩홀의 가격은 대여비보다도 식사비(한 명의 식사비로 보통 10만원 정도 돈을 내야한다)그리고 데코레이션 비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겠지만, 우리에게 결혼식이란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라는 느낌보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 '축의금을 내러 가는' 의무의 느낌이 강하다. 나 역시도 결혼식에 참석해서 머릿수를 채우고, 사진을 찍고, 축의금을 내고, 때로는 식사를 하지도 않고 급하게 자리를 떠난다. 특히 친구와 일대일로 아는 경우에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더욱 불편한 자리가 된다. 그러다보니 결혼식을 하는 당사자도,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도, 그저 서로를 위해 빨리 끝내는 결혼식이 좋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시청에서 하는 외국의 결혼식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사인하고, 친구들과 간단하게 식사하는 그런 작은 결혼식. 혹은 결혼식을 생략한 결혼. 나 역시 이런 결혼식을 꿈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혼식을 작게, 혹은 생략하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은 것이,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인륜지대사'를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것도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그동안 저축(!!!)해놓은 축의금을 되돌려 받고 싶은 속물적인 생각도 스물스물 올라올 것이고 말이다.

남편(당시에는 남자친구)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설명했지만, 결혼식을 준비하기 전 남편은 이렇게 공표했다. "나는 결혼식에 '로맨스'가 있었으면 좋겠어!"

'흑, 로맨스가 있는 결혼을 하려면, 돈이 든다구!'


그래서 나는 결국 셀프 웨딩을 선택하게 됐다. 나 역시도 비즈니스같은 결혼식은 하고 싶지는 않았고, 돈도 적게 드는 그런 결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셀프 웨딩....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신부의 입장에서는 정말 등골 빠지는 힘든 작업이기는 하다. (게다가 나는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 남편을 맞은 관계로  남자가 준비해야하는 일도 함께 하느라 말이다.) 그래도 '시월드'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고(이 부분이 신부들을 가장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혼수, 예물, 예단 같은 것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보니 조금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은 웨딩드레스를 빌리는 부분에서 한마디로 '깜놀'하였다. 가격도 싸지 않은데, 한번 입고 돌려주는 것이라니. 나 역시 억울했지만, 방법이 있나?

방법이 있었다. 빈티지 웨딩드레스를 구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빈티지 웨딩드레스로 검색을 해보면... 정말 그야말로 유령신부에게나 어울릴법한 '빈티지'인 경우가 많아서 아주 작게 결혼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결혼 사진을 독특하게 찍는 것이 아니라면 구입하기가 좀 그렇다.

'아름다운 가게'에서도 웨딩드레스를 싼 가격에 대여해준다고 했지만, 나만의 패션 스타일을 참고할 때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웨딩드레스를 많이 구입해서 입는 미국인들의 사이트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찾아낸 사이트


http://www.preownedweddingdresses.com/




이곳에서는 이미 한 번 결혼을 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가격을 낮추어 올리는 사이트이고, 직거래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페이팔'등을 이용해 대금을 지불하고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파는 사람의 조건도 각기 다른 것이 특징이다. 예쁜 드레스를 골랐는데, 외국으로 해외배송을 할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사이트의 좋은 점은 제품이 아주 많다는 것, 사이즈별, 디자이너별 드레스가 다 있다는 것. 특히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팔려나가는 최고급 명품 웨딩드레스의 지난 시즌 드레스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는 점이 특이할만하다. (내가 듣기로 베라왕 등의 드레스를 빌리는 가격이 2백~5백만원에 이른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그 가격이면 명품드레스를 구입도 가능하다) 물론, 저렴한 가격의 중저가 브랜드 웨딩드레스는 더욱 많고 말이다.






대부분의 셀러들은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고, 메일을 보내면 대부분 즉시 답을 보내준다. 물론 이런 거래에 있어서 금액지불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것!



결국 나는 몇몇 비싼 드레스에 눈이 한없이 올라가는 바람에 이 드레스 사이트는 스킵을 하고 미국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해진 중가 웨딩 브랜드 웹사이트에서 구입하게 됐다.


www.bhldn.com











약간은 빈티지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하는 이 사이트는, 드레스의 가격도 미니 드레스의 경우 500불에서부터 일반적으로 1500불, 그리고 비싼 경우 3000불 정도의 가격의 드레스를 구비하고 있다. 자주 세일을 벌이기 때문에,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라면 몇달에 걸쳐 기다리면서 세일기간에 구입하면 된다. (미국의 명절 시즌에 짧은 특가 세일도 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 곳의 하객 드레스, 한국보다는 화려한 화객드레스 중 색깔이 옅은 드레스를 리셉션 드레스로 구입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 같다. 또한 빈티지 스타일의 액세서리는 평소에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드레스에 비해 액세서리가 조금 더 비싸다는 점.


앤트로폴로지라는 패션 브랜드 모회사에서 이러한 빈티지 스타일을 원하는 브라이드를 위해 만든 웨딩브랜드라고 한다. 작년에는 한국의 모델 강승현이 이 곳의 모델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나의 드레스는...



요녀석. 물론 세일하던 드레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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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잠깐 아주 사적이지만, 기분 좋았던 이야기를 하나 하고 넘어갈까 한다.

한국에 가기 전, 나는 갑자기 좀 바빠졌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그냥 넘어왔기 때문에, 결혼식에 와준 분들에게 감사인사도 못했고 해서 작은 성의표시라도 할 요량으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덕분에 선물은 사지도 못했는데 맘만 좀 바빠졌다. 거기다가 몇몇 잡지사의 원고 청탁이 있어서(아주 감사히도)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급하게 마무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미국의 패션디자이너 레베카 밍코프를 인터뷰 하고 돌아왔다(마리끌레르 2-액세서리 전문 잡지를 위한 것). 합리적인 가격의 고급패션라인을 자랑하는 레베카 밍코프가 한국에 론칭을 한다고 한다.


레베카 밍코프를 잠깐 설명하자면, 미국의 디자이너로 핸드백과 슈즈가 특히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나에게는 여전히 비싸지만) 판매되고, 한국여성들처럼 시크한 페미닌함을 보이고 싶은 여성들에게 잘 어울리는 제품으로 이미 몇몇 해외구매대행사이트를 통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미국 글래머 매거진에 나온 그녀의 기사. (레베카 밍코프 코리아 제공)

딱 봐도, 뉴욕스타일의 예쁜 언니인데, 직접보면 모델 뺨도 때릴 것 같은 스타일에 외모, 몸매를 자랑한다.


어쨌든, 그녀의 인터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마리끌레르2를 꼭 참고하시기 바라고, 오늘 얘기하고 싶은건 인터뷰하기 전, 내 액세서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레베카 언니께서 '나 이 펜던트 맘에 든다'하고 칭찬해준 것을 좀 자랑할까 싶어서다.

물론 사람들끼리 만나면, '어머, 만나니까 정말 예쁘시네요!' '머리결이 너무 고우세요!' '오늘 그 드레스 어디서 샀어요?, 나도 사고 싶다!'라는 입에 발린 칭찬이 익숙한 이 바닥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조금 시니컬한 뉴요커 패션디자이너 언니가, 특히 액세서리에 강한 것으로 소문이 난(핸드백, 슈즈, 주얼리 등) 언니가 내 그리 비싸지 않은 목걸이에 관심을 보여주시다니, 뭐 어깨가 좀 으쓱할밖에.


꼭 자랑하겠다기 보다, 이 펜던트는 사실 내가 구입한게 아니라, 위스콘신의 작은 도시 웨스트벤드에서 살고 계신 우리 시어머니가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접 해외배송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때는 서류상으로 혼인신고를 해놓기만 한 상태라, 실질적으로는 결혼식 전이었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내 시어머니가 되신 후 해준 의미있는 선물이었다.







특히나 펜던트는 '드림'이라고 뒤에 씌여져 있고, 이렇게 펜던트 안에 원하는 참을 구입해서 넣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시어머니는, 내가 프랑스 파리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 책을 좋아한다는 것, 여행과 음악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 나와 화상채팅을 하며 꾸준히 이해해주시고 이렇게 '손혜영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주셨던 것이다.


이게 실제로 얼마나 비싼건지 나는 잘 모르지만(아마 아주 비싼 건 틀림없이 아닐테다 우리 시집식구들의 선물 철칙은 '결코 비싼 것을 사주지 않는다'기 때문에, 매해 크리스마스나 생일 때가 되면 3만원 이하의 선물을 고르느라 오히려 더 힘들다), 상대방의 장점과 꿈을 이해하고 해주신 이 선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 레베카 밍코프님께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셨을 적에, 나는 "이거 우리 시어머님이 사주신거예요, 호호"하고 자랑을 하며 뿌듯했던 것이다. 어쩌면 패션디자이너인 그녀는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위해 눈여겨 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소품이 나에게는 그냥 펜던트가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시어머니의 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가 되어 더욱 좋았다고 할까.


미국남편을 만났다고 해서 '시월드'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뭐, 시월드의 부정적인 의미를 제하고라도, 내 부모님, 내 가족이 아닌 서로다른 문화권의 가족과 친해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꼭 '외국인' 시어머니라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 '시어머니'는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신다. '내가 샤넬 백 하나 사줄테니 나한테 평생 고마워하고 잘해라' 하는 시어머니보다, '이거 내가 널 생각하면서 산 길거리 목걸이란다'(심지어 길거리 목걸이도 아니고)라고 웃어주는 시어머니가 정말 고맙다.

그렇다 오늘은, 그냥 좀 자랑질이었다. 9월에 브루클린에서 열리는 북페어 때문에 시어머니가 뉴욕에 놀러 오시는데, 나는 한국으로 떠나버린다. 그럼에도 여전히 잘 다녀오라고 웃어주시는 우리 시어머니, 좀 자랑해도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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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내가 꼭 원한 일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그저 이 비싼 뉴욕에서 돈을 좀 아끼려고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여기는 인건비도 비싸고, 세일즈 택스가 붙고, 거기에 팁도 주면.... 본래 가격에서보다 20% 이상은 올라간다. 미리 변명을 먼저 해보자면 나도 아직까지 미장원에 한 번도 못갔다. 셀프 염색 할 수 있다고 해서 했다가, 머리만 얼룩덜룩해졌고, 땀만 많이 났고, 머리결만 망가졌다. (다행히 다음달에 한국 갈 일이 있어서, 긴머리를 싹둑 단발머리로 자를 예정이다)


남편은 계속해서 나에게 부탁을 했고, 드디어 나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바리깡'이라는 걸 들었다.

그래, 세상에는 좋은 게 있다. '유튜브'에 가면 남자 머리 잘라주는 방법을 쉽게 가르쳐준다. 바리깡을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를 잘 가르쳐준다. 쉬워보였다. 뭐 까짓거. 여자 머리도 아니고, 남자머리인 것을!


처음엔 조심조심 잘 했다. 그러니까 머리카락이 잘 안 짧아진다. 남편의 머리는 몇달간의 여행으로 덥수룩한데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됐다.




그것도 시부모님 댁에서 귀한 둘째 아들의 머리를 내가 이따위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정말, 내가 시월드가 없는 미국으로 시집오길 다행이다. 모두들, 내 편을 들어주신다.


미안해 남편 2주만 참아 했는데..............

그리고 정말 착한 내 남편은 "내가 해달라고 했는데, 뭐. 괜찮아. 고마워. 다음에 잘 해줘!"

이 사진을 보고도 또 바리깡을 나에게 맡긴걸 보니.

내 남편은 나를 정말 사.랑.하.나. 보.다.


두번째 때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살살 자른듯 만듯 해서 그나마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엔 정말....완전히.. 이것보다 더 망쳐버렸다.

이번 사진은, 남편에게도 사회적 지위라는 것이 있는 관계로 정말 올리지를 못하겠다.

나는 오히려 화를 버럭 내며, "이게 나한테 얼마나 스트레스인줄 알아! 넌 나에게 지금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구! 난 못한단 말야!!! 무섭다고 했잖아."


착한 남편은 이게 스트레스인줄 몰랐다며 오히려 미안하다고 나를 다독였다. 2주간 모자를 매일 쓰고 나닌 남편이 오늘 나에게 말했다. "월요일에 미장원 가야겠다."


속으로는 또 '아, 한 번 더 시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돈 조금 더 쓰고, 남편 사회생활하게 해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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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얼루어> 10주년기념호 컬럼


<10년전이었다면 당신은...?>이라는 주제로 원고청탁이 들어왔다. 남편이 종종 나에게 말한다. 나는 과거지향적이라기보다 미래지향적이라고. 칭찬이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과거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있어도 과거에 가졌던 감정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 못된다. 그래서 아마도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가는 대신, 잘못을 곧잘 되풀이하는지도.
내가 무슨 충고를 할만한 입장이 되냐면서도, 원고료라는 달콤함과 담당 에디터와의 친분에 넘어가 꼰대짓 좀 해봤다. 어쨌든 결론은 뭐가 됐든, 내 말은 듣지 말라는 것이다.


<언니의 충고>

당신은 생각만큼 늙지 않았다.

언제가 성인이었을까? 당신이 이제 법적으로 알콜을 마셔도 된다고 나라에서 선언해주었던 스무살, 아니면 끔찍한 입시지옥에서 벗어났던 고3 졸업식, 그도 아니라면 약육강식의 사회에 발을 내딛었던 입사 첫 날?

솔직히 서른 일곱이 된 지금에도 그 ‘Adult’라는 단어의 정의를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실수투성이고, 좌절의 늪에서 헤엄치기도 하고, 초등학교 학생처럼 날뛰며 좋아하기도 하고, 며칠동안 청소 한 번 안하고 발가락으로 리모컨 TV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넌 도대체 지금 몇 살이니?

‘10년 전이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뜬금없이 성인에 대한 정의를 몰고 들어온 건, 스물 일곱의 (그 때는 몰랐지만) 꽃다운 나이에 내가 지나치게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지나치게 골몰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기대하는 성인으로서의 룰에 나를 끼워맞추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나를 지나치게 혹사시켰던 것이다. 오로지 대학입학만을 목적으로 달렸던 10대를 보낸 우리들은 만 20세가 되어서야 겨우 자유라는 것이 뭔지 알았다. 그제서야 라는 사람의 정체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뭔지 배우기 시작한 내가 스물 일곱이라는 나이에 마치 세상을 다 아는 사람처럼 흉내내봤자 소용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사회에 나섰을 때, 선배나 상사에게 꾸지람이라도 들으면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인간인가’ ‘내가 꿈꿨던 커리어우먼은 이게 아니었어하며 세상 끝난 것처럼 좌절하거나 세상을 욕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던 것 같다.

만약 지금 그 나이를 보내는 (당신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꽃다운 청춘들이 있다면, 당신이 아직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충분히 늙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깨져도 된다. 욕 좀 먹어도 된다. 실수 충분히 해도 된다.  서른 일곱이 되고 보니, 나는 그 때 이제 막 사회에 입문한 새내기라는 사실을 몰랐다. 사회에 발을 내디뎠으니 완벽한 드라마 커리어우먼처럼 잘할 줄만 알았다. 좌절할 시간에 까짓거하면서 조금 더 즐겼으면 좋았을 걸, 나를 알아보지 못한 세상 탓 할 시간에 다음에 잘하지 뭐조금 더 경쾌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면 보다 생산적인 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너무 어린 나이에 남들의 기대에 맞게 내 인생을 결정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다면 보다 많은 것을 경험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30대가 오고 40대가 온다. 그저 착실하게 맡은 일만 잘 하면 대리자리도 오고 과장 자리도 오고 차장자리도 온다. 하지만 조금 더 재미난 삶, 즐거운 삶은 누구에게나 오는 건 아닌 것 같다. 고작 10년 후면 촌스러워서 들고 다니지도 못할 고가의 명품 백을 구입하고 돈 좀 있는 척, 성공한 척 하느니 그 돈으로 조금 더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배낭여행도 한 번 더 했었더라면(지금은 몸이 힘들어서 여행을 가는데도 2배의 경비가 든다) 보다 넓은 견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영어공부 같은 것도 재밌어서 신나게 했을 것 같다. 맨날 학원 끊고 3일도 못가서 중도하차하던, 지루한 학원등록게임 같은 거 안하고 네이티브처럼 입이 훨훨 날지 않았을까. 그래도 여전히 글로벌 시대인 관계로, 현재 30대 중반에 다 굳어버린 머리로 영어 공부하려니 머리가 다 아프다.

연애도 그랬다. 그 때 만났던 소위 괜찮은 조건의 변호사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나의 욕망, 야심, 장점을 다 꼭꼭 숨기고 착한 척, 순한 면만을 부각했더니 그의 어머니가 혼수 비용 운운하시며 결혼하면 회사도 때려치우고 남편 월급 중 일부도 꼬박꼬박 보내라고 했다. 도대체 왜 나는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 그 마마보이에게 3년을 허송세월 했을까. 나를 얕잡아 보지 않을 남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남자, 나를 간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그런 남자 심지어 사회가 이야기하는 조건 좋은 남자도 내가 다울 때 나타난다. 까짓거 나이도 젊은데 뭐 어떤가, 유혹에도 흔들리고, 나쁜남자도 만나보고 그러면서 연애라는게 뭔지도 배우고, 남자라는 족속이 어떤지도 좀 미리 배우고, 그럴걸. 그걸 몰라 나는 서른 넘어 뒤늦게 바람나서 찌질한 루저 녀석들을 만나고 다녔다. 서른 넘어 방황하고 마음에 상처를 얻으면 회복이 늦다. 새살이 늦게 돋는다. 하지만 20대 때는 모든 것이 더 쉽다. 새살도 빨리 돋고, 경험한 만큼 깨달음도 크다.

그러니까 내 말은,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대가 당신을 먹여살려주지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10년 전이었다면 나는 보다 자유롭고 싶다. 그 자유와 젊음을 보다 누리면서 신나게 지냈을 것이다. 서른이 지나고 나서야 나 자신에게 솔직하자며 뛰어다니면 추해지는 것 같다. 마치 20대 대학생이 입을 법한 초미니스커트에 핑크 블러셔를 얼굴에 떡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 창피하게도 내가 그 미니스커트 핑크블러셔였다.  그러니 20대 때는 맘껏 자유로워도 된다. 그 이후 30, 어른이 되면 된다.



당신이 아직 20대라면, 아니, 30대 초반이라도 괜찮다. 하늘로 날아라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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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차 가고 벤츠 온다

 

지긋지긋한 나쁜 남자, 이제 폐차장에 보내버려라. 이제는 벤츠를 뽑을 차례다.

 

연애 원고 하나만 써주세요.” 카톡으로 온 담당 에디터의 메시지다. 안정된 결혼생활, 그것도 신혼생활은 사람의 감성을 무디게 만드는 면이 없지 않아 몇달 전만 해도 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던 드라마도 그 어떤 이별 노래도 보살이 된 듯 아 이 어린 녀석들, 허허하고 무념무상의 도를 터득하게 된지 오래. 사람의 가슴이 조물조물 꿈틀꿈틀대는 감정에서 멀어진 나로서는 간만의 연애원고 청탁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제는 벤츠남을 만나는 법그리고 내 남편이 벤츠남에 가까운 것 같아서라는 참고 내용.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수많은 잘생긴 배우들이 뜬다. 하지만 신조어 벤츠남에 대해서 이렇다할 답변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똥차 가고 벤츠 온다’,  별볼일 없는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고 나면 결국  벤츠처럼 완벽한 남자를 만난다정도로 요약이 되겠다.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내 남편은 벤츠랑은 좀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제 학생신분에서 막 탈출해 돈도 없고, 따져보면 외모도 썩 훌륭한 편은 못된다. 물론 언제나 사려깊게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려고 노력하는 그에게 언제나 고마운 건 사실이지만. 그런데 벤츠남이라니? 게다가 벤츠라는 말이 너무 럭셔리해서 말이다.

 

 


얼마전 이효리가 결혼 발표를 했다.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이효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톱의 자리를 잃지 않고 줄곧 화려하게 살아온 사람이었기에 아마도 그녀의 결혼 발표에 많은 사람들이 더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그녀가 재벌집 아들이라도 만났거나, 인기 정상의 배우를 만나 결혼발표를 했다면 이렇게 이렇네 저렇네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녀의 결혼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은 공통적인 반응인 듯 하다.


나쁜 남자는 매력적이다. 가끔은 치명적이다. 남녀 관계의 권력 수평 밸런스가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그 남자는 나쁜 남자가 된다. 여자들의 경우, ‘사랑한다의 말을 나자신보다  널 더 생각한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허울좋은 단어로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정기적으로 했던 플랜들을 한번에 뒤집곤 한다.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때문에 지난 달 큰맘 먹고 등록한 영어 학원을 몇 번이나 빠졌는지 생각해봐라. 남자들은 친구들의 술자리 때문에 학원을 빠지는 경우는 있어도, 여자친구 때문에 데이트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쉽게 수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가 하는대로 참고 내버려둘 정도로 그리 순정적이지도 않다. 내가 희생한 사랑만큼 그도 나에게 되돌려주길 바란다. “너 왜 전화 안받아? 나는 너 때문에 이것도 안했고 저것도 안했고.” “누가 그러래? 내가 그러랬어?” 당신이 사랑한다는 그 나쁜 남자, 그렇게 싸우고도 결코 끝낼 수는 없었던 그 남자는, 어쩌면 내 남자가 아니다. 집안에서 공부 하나 잘했다고 오냐오냐 자란 그 이기적이고 자기본위적인, 어딜가나 잘 난 그 남자는,  아무리 잘생기고 집안이 좋았다고 한들 어쩌면 내 남자가 아니다. 그 남자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배려없는 그의 태도도 참아내고, 멋대로 연락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그를 이해만 해주는, 그런 순정적인 여자다. 당신 자신의 자존심을 멋대로 생각하고 당신을 스스로 학대하게 만드는 그 남자는 그리 훌륭한 남자도 아니다.


솔직히 우리가 이효리의 진짜 연애사를 알 턱도 없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처럼 당차고, 똑똑하고,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여자가 마치 누군가를 떠받들듯 모시며 시집을 가려고 했었다면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


여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떠받들며 시집가지 않아도 될 남자가, 내가 떠받들며 시집가야하는 남자보다 못한것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오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나쁜 남자들의 덫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남자들이 있다. 당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지지하고 도와주며 응원하는 남자. 자신의 미래만큼이나 나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고 조율하려는 남자. 굳이 나보다 앞에 나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그까짓거 신경쓰지 않는 남자. 너무 훌륭하다고? 맞다. 당신이 떠받들어야 관계가 가능했던 그 남자보다 훨씬 훌륭하다. 하지만 당신은 충분히 그런 남자를 만났고, 그런 남자에게 관심도 받았지만, 무신경하게 그들을 흘려보냈다. 그들은 생각보다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남편처럼 190이 훌쩍 넘어서 장대처럼 보일 수도 있고, 항상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했기 때문에, 나를 깔깔대고 웃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구의 다이어그램 안에 그를 꼼짝 못하게 묶어놓기도 했다. <아빠, 어디가>의 윤민수 같은 남자, 아내 자랑에 여념이 없는 강성진같은 남자, 그런 남자들을 놓친 건, 그런 남자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남자를 보지 않은 당신 탓일 수도 있다. 뽀얗게 앉은 먼지를 털고 나니, 그 남자가 벤츠로 보이더라 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쁜 남자군에서 남자를 만나고 있는 당신을 탓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 당신의 감정과 브레인을 멋대로 휘젓고 흔들어놓는 그 소용돌이가 지긋지긋해질 때, 그 때, 차분히 주변을 보면 되지 않을까. 잔소리 많은 어르신들의 말이 옳을 때가 더 많다. 사랑이란 꼭 폭풍우 같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천천히 젖는 것도 괜찮다. 그리고 그렇게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 앞을 보고 걷기도 더 쉽다. 

 


PS 이 원고를 마리끌레르에 송고하고 책도 나온 후, 나는  이효리 결혼식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참 그녀답다. 그래서 그녀를 좋아한다. 나도 결혼식이라는 걸 힘들게 준비해봤지만, 결혼식에 오는 사람도, 하는 당사자도 어서 빨리 이 '일'을 후딱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나는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서 파티도 열고, 시아버님과 춤도 췄지만...여튼, 머릿속에는 오직 어서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으니까. 온 하객들에게 미안하고 어색하고, 창피하고, 고맙고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식'이라는 걸 도대체 왜 하는걸까?라고 몇번이나 생각했었다.

다행히 그녀는 우리처럼 비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소신껏 자신의 삶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좋다. 그녀가 그녀다워서. 이렇게 톱스타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일깨우는 건 분명 사실인 것 같다. 15년 전, 그녀가 핑클이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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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완전 주의)


한국보다 하루 이틀 늦게 개봉한 <비포 미드나잇>.

각종 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리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때마다 이를 멀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결국 이 영화가 개봉한 바로 오늘, 금요일 저녁,  '미국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다.



OMG. 이미 영화 트레일러를 통해 대략 예상을 했지만, 그들은 이제 5월의 라일락같은 로맨스를 현실화 해버렸고, 함께 석양(SunSet)을 지켜보는 사이가 됐다. 우리처럼.




"still there, still there, still there..............GONE."


생각해보면 나는 1996년,(슬프게도 재수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그래도 나름대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비스무리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차, 학원 반에서 나에게 데이트를 요청했던 한 아이와 인생 처음으로 남자랑 같이 본 '데이트 영화'였화였던) 코아 아트홀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두 가지를 생각했다. 1. 대학에 들어가면 꼭 유럽여행을 가서 유레일 패스를 끊어 여행을 다녀야겠다. 2. 멋진 외국인 남자랑 대화를 하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영어 공부도 해야겠다. --(그래서 아마 영화보는 내내,  내 옆에서 자꾸 내 손을 잡으려고 하면서 영화보기를 방해했던 그 아이가 그닥 맘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뭐 근 20년이 다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굳이 이 영화를 내 스토리라고 끌어다 놓고 생각하려다보니,

내가 외국인과 결혼하게 만든 영화가 이 영화가 아니었나,라는 억지스러운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뭐가 됐든, 내 또래(플러스 마이너스 5년의 오차 범위 내)의 사람들이라면,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시리즈와 <건축학 개론>이 다 내 이야기라고 우길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게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우길 명분이 생긴 것이.

어쩌다보니 미국인 남자랑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이다.

쌍둥이 딸만 없다 뿐이지, 하긴, 난 또 결혼의 재물이 되어버렸지. 또한 그들이 나보다 다섯살 위라는 사실. 흠흠. 어쨌든 비슷하잖아?


특히 <비포 선셋>에서 셀린이  보인 히스테리컬한 모습, 남자들이라면 저 여자 미친거 아니야 했던 장면-자동차에서 갑자기 내리겠다면서 눈물을 터뜨리고, 사실 우리 그 때 같이 잤던거 나 기억해!하는-을 너무 잘 이해했던 나는, 그러니까  독신으로 사는 30대 여자들의 (결혼과는 상관없는) 불안한 심리를 너무 잘 이해했었기 때문에 더욱 그녀의 미래가, 궁금했었다.  

세계와 가족과 사람들의 관계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치는 그래서 예민한 여자,  착한 사람은 아니어도 좋은 사람은 되고 싶은 여자, 감정기복은 심하지만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은 여자, 꽤 까다롭고 피곤한 여자지만 매력적인 여자, 뭐 모든 여자들이 다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


여하튼 그녀는 '애프터 선셋'에 있어,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뉴욕에 가서 이혼시키고,  애를 덜컥 가져서 파리로 남친과 돌아와서 애 낳고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셀린은 열정적이고, 겉으로 보기에 강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 이기적이고, 나름대로는 자신이 생각한 룰에 충실한, 그런 여자야!

만약, 제시가 셀린에게 청혼을 했다면, 그랬다면 그녀는 받아들였을까?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아마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일정부분 자기방어적인 논리를 만들어내고, 다시 아니라고 했다가 그래도 했겠지?.. 라고 생각한다.

뭐랄까, 그들이 결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애는 덜컥 가져서 살고 있는 이 상황이 정말 그들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 왜 자꾸 나는 셀린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남편이 계속 '제시가 좀 안됐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도, 아, 셀린, 너 정말 참 피곤하다. 라고 생각은 했는데, 솔직히 참. 남자들이 자꾸 셀린 별로라고 하면 나 화나거든? 제시 솔직히 너 <비포 선셋> 때, 셀린이 피곤한 여잔거 알았잖아. 그런데도 넌 매력을 느꼈지. 왜냐. 말이 통하고, 재밌거든. 원래 그런여자들이 다 예민하기 마련이고.

솔직히 터놓고 생각해보자. 제시같은 남자. 참 매력적이지. 그런데 사실은 나쁜 놈이잖나? 그런게 다 포장된다.
자, <비포 선셋>에서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그녀는 좋은 여자야 하지만... 결혼이라는게...'하는 남자치고, 참, 좋은 남자 별로 없다. 물론, 이해가 안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 남자 역시 완벽하게 괜찮은 남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주인공 셀린에게 어떤지 몰라도, '엑스 와이프'에겐 정말 여러모로 완전 끔찍한 남자다. 소설로, 그리고 현실로 아주 그냥 대못 쾅쾅 박았지. 그리고 그 커플은 유명해졌고, '엑스와이프'가 그를 싫어하는 건 정말 너무 당연하잖아.


남편이 얘기한다. 그래서ㅡ 제시는 그 에밀리 블라블라 여자랑 잤을까?

"잤겠지"

"뭐라고? 아니야, 그랬을리가 없어. 제시는 좋은 사람이잖아.그랬다면 실망할거야. "

"제시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생각해보라고. 게다가 싸울 때 비실비실 웃으면서 여자 더 열받게 하고. 본래 저런 놈들이 뒤에서 호박씨나 까고 있지. 비포 선셋에서 그거 봐. 결혼이 지루하다고 옛 여자 만나서 잔 놈이야. 비행기도 놓쳐가면서!!!!"(씩씩)


여전히 제시가 이 모든 상황에서 너무 셀린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남편에게 나는 일단 이 쌈질에서 제시가 가진 태도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나에게 묻는다.

" 생각해봐, 제시는 계속 싸움을 피하려고 하는데, 결국 이래저래 찔러대는 셀린한테 한방을 먹인거야. 뭐 그게 잘했다는 건 아닌데. 싸움을 피하려는 사람한테 계속 저러니까 제시가 안된건 사실이잖아."

" 싸움 전체를 통틀어, 여자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특히 그 문제가 바로 남자 때문에 벌어졌을 때-(시카고에 가고 싶다고 징징댄건 제시 너였어@@)- 남자들은 '뭐 그깟 일로. 자 넘어가자' 하고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별것도 아닌걸로 징징대는 여자 취급을 하는 남자들. 아. 진짜 열받는 거라고. 킬킬 대면서 너 왜이리 예민하게 굴어...의 태도를 시종일관 취하고 있잖아. 게다가 막판에 아주 가슴에 칼을 꽂는구나! 제시!!!!"

"알았어..... 안그럴게." ---그 태도 좋아, 남편.


그렇다고 내가 제시가 싫다는 건 절대 아니다. 너무너무 매력적이다. 이 남자. 이렇게 재치 있는 남자를 싫어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얄밉기는 하다. 셀린이 너무 얄밉게 보이는 것 같아서, 예민한 나로서는.. 그냥 속상하다.


아, 너무 실생활로 파고 들었기 때문에 다시 영화로 돌아올 필요가 있겠다.


여하튼 링클레이터는 요즘 사람들의 연애를 자꾸 보여주고자 하는데,

특히 제시의 아들이 여름방학중에 그리스에서  살짝 사랑에 빠진 걸 두고, 셀린은 이렇게 얘기한다.

" 뭐 페이스북 친구하고 그러지 않겠어? "

그리고 젊은 그리스 커플은 스카이프 채팅으로 밤새도록 연애한 이야기를 해준다.


과연 19년 전의 이 커플이 현재  20대였다면 "6개월 후 여기서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가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런  약속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로맨틱 했을까?


솔직히 나에게 이 테이블의 다양한 커플들의 대화는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어쩌면 이 장면이 링클레이터가 <비포>시리즈의 어떤 동시대적인 사랑이야기, 우리 세대가 생각하고 공감하는  이야기에 대한 적극적인 변명, 설명인 듯 보인다.


에단호크가 어떤 인터뷰에서 그랬다지. 그가 영화를 만든다면 <애프터 선라이즈> <애프터 선셋> <애프터 미드나잇>을 만들겠다고. 스타워즈 처럼 뭔가 괜찮을 법도 한데! :)


미국인 남편, 나랑 크게 부부싸움을 해도, 절대 절대, 그순간만큼은 제시가 그런것처럼 내 영어를 고치려고 하지 말아줘. 나는 셀린보다 더 예민한 여자라 그정도로 안 참아. 알겠지!
























Posted by NYCbr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