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언니들이 만들어주는 도시락





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내가 가진 직업은 밤샘, 야근이 일상화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초보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선배들이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은 "남자친구 있냐?"이고 yes라는 답이 나오면(특히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자친구라면), "흠, 조만간 헤어지겠군."이라고 겁을 주는 것이었다. 연애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기도 하거니와, 새로운 사회와 직장의 분위기가 남녀 권력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많았기 때문이다.


가 됐든 나 역시 그런 케이스의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이 어린 후배인 나에 대해 관심이 가진 것은 남녀관계라기보다 나의 먹성과 식성이었다. 첫 번째 야근과 첫 번째 회식에서 보여준 나의 남다른 고기 사랑이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우리 팀에 내 아래로 후배가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은 관계로, 막내의 일거수일투족 놀리게 되는 사회생활의 특성상, 나의 먹성은 꽤 오랫동안 선배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덕분에 감히 막내인 주제에 '부장님, 야식 먹고 싶어요'를 외쳐도 괜찮은 상황이 되었고, 언제나 '족발'아니면 '치킨'을 주문하는(솔직히 별다른 야식 거리도 없지 않나. 가끔 맥주에 골뱅이를 회사로 배달하는 것 빼고) 나의 메뉴 선택 습관에 모두들 익숙해졌다. 그래서 내가 사무실에 없는 날 치킨을 먹고 나면 모두들 회의실에서 고기를 뜯으며 '우리 **가 없네'하고 친히 생각해주시기도 했었고, 치킨이 조금 남아 버리려고 하면 "얘, 그거 버리지 마, 내일 아침에 **가 해치울지도 모른다." 라는 다정한 상사들의 말씀으로(가끔은 혼자 사는 나더러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하시는 등) 나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몇 번이고 베지테리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봤지만, 고기가 없는 식단은 상상이 되지 않고 최근에 돌아다니는 '오리털 깎는 동영상'을 보면서도 오리털 재킷과 이불의 따뜻함을 놓칠 수가 없는 나는 '약한' 인간인 것이다. 여 튼 나는 한국의 대부분 치킨집들을 아주 잘 알고 있고(혹은 알고 있을 거라 모두들 기대했고) 특히 배달 치킨의 신메뉴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논할 자신이 있었다. 중국집 깐풍기의 소스에 대해서도 1시간 이상 떠들 수 있었고, 동네 바비큐 치킨집(경리단길 입구에 있는 이태원 바비큐라고 있었는데, 정말 맛있다.) 아저씨와는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하게 될 정도였다. 하 지만 미국에 와서 아쉬운 건, 동네마다 널려 있어야 할 프라이드 치킨집이 많지 않다는 것, 치킨은 야식이 아니라 하나의 요리로만 인식한다는 것 등등. 고작해야 길 위에서 치킨 케밥을 먹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재미가 없었다. 비안 당(Bian Dang)을 만나기 전까지는. 


지난 늦여름 예쁜 트럭의 모습 때문에 찍어두었던 비안 당.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나도 먹고 싶었지만, 이미 내 손에는 다른 트럭 음식이 잔뜩 들려 있었고.




그런데 며칠 전 이렇게 파크 애비뉴와 렉싱턴 애비뉴 사이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뉴욕에 살면서 좋은 점은 지역별로 서로 다른 맛과 메뉴를 가진 중국음식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으려면 맨해튼 곳곳을 뒤져야 하거나 아니면 아예 퀸즈 쪽으로 나가 플러싱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타이완(대만) 도시락 스타일을 팔고 있는 비안 당은 주로 53번가, 파크 애비뉴와 렉싱턴 애비뉴 사이, 혹은 때때로 파이낸셜 디스트릭트 쪽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내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혼자 중얼대자 언니가 묻는다 "중국말 할 줄 알아요?" 미안, 전 한국인이라서. :) 


닭고기 혹은 돼지고기가 유명하다고 하니, 나는 무조건 치킨으로. 밥 위에 치킨 다리라고 하니 어쩐지 더 행복해진다. 나는 치킨 가슴살보다는 다리, 날개를 더 좋아하는 타입. 

이렇게 소담스럽게 도시락을 만들어주는데 투명한 뚜껑 사이로 드러나는 저 커다란 닭다리!

중국 향신료의 향이 나는 대만식 프라이드치킨에, '재스민 라이스'라고 불리는 가느다란 태국식 쌀로 만든 밥, 그리고 겨자잎 장아찌, 중국식의 갈은 돼지고기 소스를 밥 위에 얹는다. 소스는 조금 짭조름한데 아마도 중국식 간장, 그리고 전분가루 등을 넣은 소스가 아닐까 한다. 특히 겨자잎으로 만든 중국식 피클이 꽤 인상적인 향을 냈다.


특히 메뉴 중에 Zong Zi 중국식 타말이라고(타말은 중남미식의 쌈 음식을 이야기한다. 잎에 싸서 찌고 삶는 스타일) 써 있어서 중남미식 퓨전인 줄 알았는데, 중국식 쌈 음식이라고 해서 하나 또 구입. 모양이 삼각김밥처럼 되어있다. 아시아에서 이런 주먹밥 스타일은 쉽게 운반할 수 있는 점심으로 쉽게 발전하는 것 같다. 


이렇게 대나무 잎으로 밥을 싸고 끈으로 풀리지 않도록 칭칭 동여맨 뒤 쪄내는 방식.

역시 예쁜 도시락 패키지 안에 넣어준다. 재활용 100% 하기로.

대나무 잎을 벗기고

이렇게 보기에는 살짝 떡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안에는 쫀득쫀득한 밥이 무언가를 가득 담고 있다.

풀어헤치니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다양한 음식들이 들어있다. 삼겹살, 중국식 소시지, 중국 요리 때 꼭 나오는 중국 땅콩, 말린 새우, 완두콩, 무, 버섯 등등이 들어가 있어서 일종의 영양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격도 4달러 정도로 착한 편.


위치 및 스케줄

하지만 자주 변화하기 때문에 트위터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트위터@biandangnyc


가격: 일반 도시락은 7달러~9달러, 사이드 메뉴 3달러~5달러 정도. 

그렇다고 해도 1만 5천원도 안되는 돈으로 어마어마한 양을 배달해주는 한국 프라이드치킨이 나는 어쩐지 그립다. 여기 간장 치킨은 한국보다 가격이 훨씬 더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