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완전 주의)


한국보다 하루 이틀 늦게 개봉한 <비포 미드나잇>.

각종 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리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때마다 이를 멀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결국 이 영화가 개봉한 바로 오늘, 금요일 저녁,  '미국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다.



OMG. 이미 영화 트레일러를 통해 대략 예상을 했지만, 그들은 이제 5월의 라일락같은 로맨스를 현실화 해버렸고, 함께 석양(SunSet)을 지켜보는 사이가 됐다. 우리처럼.




"still there, still there, still there..............GONE."


생각해보면 나는 1996년,(슬프게도 재수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그래도 나름대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비스무리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차, 학원 반에서 나에게 데이트를 요청했던 한 아이와 인생 처음으로 남자랑 같이 본 '데이트 영화'였화였던) 코아 아트홀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두 가지를 생각했다. 1. 대학에 들어가면 꼭 유럽여행을 가서 유레일 패스를 끊어 여행을 다녀야겠다. 2. 멋진 외국인 남자랑 대화를 하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영어 공부도 해야겠다. --(그래서 아마 영화보는 내내,  내 옆에서 자꾸 내 손을 잡으려고 하면서 영화보기를 방해했던 그 아이가 그닥 맘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뭐 근 20년이 다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굳이 이 영화를 내 스토리라고 끌어다 놓고 생각하려다보니,

내가 외국인과 결혼하게 만든 영화가 이 영화가 아니었나,라는 억지스러운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뭐가 됐든, 내 또래(플러스 마이너스 5년의 오차 범위 내)의 사람들이라면,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시리즈와 <건축학 개론>이 다 내 이야기라고 우길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게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우길 명분이 생긴 것이.

어쩌다보니 미국인 남자랑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이다.

쌍둥이 딸만 없다 뿐이지, 하긴, 난 또 결혼의 재물이 되어버렸지. 또한 그들이 나보다 다섯살 위라는 사실. 흠흠. 어쨌든 비슷하잖아?


특히 <비포 선셋>에서 셀린이  보인 히스테리컬한 모습, 남자들이라면 저 여자 미친거 아니야 했던 장면-자동차에서 갑자기 내리겠다면서 눈물을 터뜨리고, 사실 우리 그 때 같이 잤던거 나 기억해!하는-을 너무 잘 이해했던 나는, 그러니까  독신으로 사는 30대 여자들의 (결혼과는 상관없는) 불안한 심리를 너무 잘 이해했었기 때문에 더욱 그녀의 미래가, 궁금했었다.  

세계와 가족과 사람들의 관계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치는 그래서 예민한 여자,  착한 사람은 아니어도 좋은 사람은 되고 싶은 여자, 감정기복은 심하지만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은 여자, 꽤 까다롭고 피곤한 여자지만 매력적인 여자, 뭐 모든 여자들이 다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


여하튼 그녀는 '애프터 선셋'에 있어,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뉴욕에 가서 이혼시키고,  애를 덜컥 가져서 파리로 남친과 돌아와서 애 낳고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셀린은 열정적이고, 겉으로 보기에 강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 이기적이고, 나름대로는 자신이 생각한 룰에 충실한, 그런 여자야!

만약, 제시가 셀린에게 청혼을 했다면, 그랬다면 그녀는 받아들였을까?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아마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일정부분 자기방어적인 논리를 만들어내고, 다시 아니라고 했다가 그래도 했겠지?.. 라고 생각한다.

뭐랄까, 그들이 결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애는 덜컥 가져서 살고 있는 이 상황이 정말 그들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 왜 자꾸 나는 셀린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남편이 계속 '제시가 좀 안됐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도, 아, 셀린, 너 정말 참 피곤하다. 라고 생각은 했는데, 솔직히 참. 남자들이 자꾸 셀린 별로라고 하면 나 화나거든? 제시 솔직히 너 <비포 선셋> 때, 셀린이 피곤한 여잔거 알았잖아. 그런데도 넌 매력을 느꼈지. 왜냐. 말이 통하고, 재밌거든. 원래 그런여자들이 다 예민하기 마련이고.

솔직히 터놓고 생각해보자. 제시같은 남자. 참 매력적이지. 그런데 사실은 나쁜 놈이잖나? 그런게 다 포장된다.
자, <비포 선셋>에서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그녀는 좋은 여자야 하지만... 결혼이라는게...'하는 남자치고, 참, 좋은 남자 별로 없다. 물론, 이해가 안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 남자 역시 완벽하게 괜찮은 남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주인공 셀린에게 어떤지 몰라도, '엑스 와이프'에겐 정말 여러모로 완전 끔찍한 남자다. 소설로, 그리고 현실로 아주 그냥 대못 쾅쾅 박았지. 그리고 그 커플은 유명해졌고, '엑스와이프'가 그를 싫어하는 건 정말 너무 당연하잖아.


남편이 얘기한다. 그래서ㅡ 제시는 그 에밀리 블라블라 여자랑 잤을까?

"잤겠지"

"뭐라고? 아니야, 그랬을리가 없어. 제시는 좋은 사람이잖아.그랬다면 실망할거야. "

"제시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생각해보라고. 게다가 싸울 때 비실비실 웃으면서 여자 더 열받게 하고. 본래 저런 놈들이 뒤에서 호박씨나 까고 있지. 비포 선셋에서 그거 봐. 결혼이 지루하다고 옛 여자 만나서 잔 놈이야. 비행기도 놓쳐가면서!!!!"(씩씩)


여전히 제시가 이 모든 상황에서 너무 셀린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남편에게 나는 일단 이 쌈질에서 제시가 가진 태도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나에게 묻는다.

" 생각해봐, 제시는 계속 싸움을 피하려고 하는데, 결국 이래저래 찔러대는 셀린한테 한방을 먹인거야. 뭐 그게 잘했다는 건 아닌데. 싸움을 피하려는 사람한테 계속 저러니까 제시가 안된건 사실이잖아."

" 싸움 전체를 통틀어, 여자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특히 그 문제가 바로 남자 때문에 벌어졌을 때-(시카고에 가고 싶다고 징징댄건 제시 너였어@@)- 남자들은 '뭐 그깟 일로. 자 넘어가자' 하고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별것도 아닌걸로 징징대는 여자 취급을 하는 남자들. 아. 진짜 열받는 거라고. 킬킬 대면서 너 왜이리 예민하게 굴어...의 태도를 시종일관 취하고 있잖아. 게다가 막판에 아주 가슴에 칼을 꽂는구나! 제시!!!!"

"알았어..... 안그럴게." ---그 태도 좋아, 남편.


그렇다고 내가 제시가 싫다는 건 절대 아니다. 너무너무 매력적이다. 이 남자. 이렇게 재치 있는 남자를 싫어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얄밉기는 하다. 셀린이 너무 얄밉게 보이는 것 같아서, 예민한 나로서는.. 그냥 속상하다.


아, 너무 실생활로 파고 들었기 때문에 다시 영화로 돌아올 필요가 있겠다.


여하튼 링클레이터는 요즘 사람들의 연애를 자꾸 보여주고자 하는데,

특히 제시의 아들이 여름방학중에 그리스에서  살짝 사랑에 빠진 걸 두고, 셀린은 이렇게 얘기한다.

" 뭐 페이스북 친구하고 그러지 않겠어? "

그리고 젊은 그리스 커플은 스카이프 채팅으로 밤새도록 연애한 이야기를 해준다.


과연 19년 전의 이 커플이 현재  20대였다면 "6개월 후 여기서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가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런  약속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로맨틱 했을까?


솔직히 나에게 이 테이블의 다양한 커플들의 대화는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어쩌면 이 장면이 링클레이터가 <비포>시리즈의 어떤 동시대적인 사랑이야기, 우리 세대가 생각하고 공감하는  이야기에 대한 적극적인 변명, 설명인 듯 보인다.


에단호크가 어떤 인터뷰에서 그랬다지. 그가 영화를 만든다면 <애프터 선라이즈> <애프터 선셋> <애프터 미드나잇>을 만들겠다고. 스타워즈 처럼 뭔가 괜찮을 법도 한데! :)


미국인 남편, 나랑 크게 부부싸움을 해도, 절대 절대, 그순간만큼은 제시가 그런것처럼 내 영어를 고치려고 하지 말아줘. 나는 셀린보다 더 예민한 여자라 그정도로 안 참아. 알겠지!
























Posted by NYCbr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