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홍콩 등의 아시아권 국가를 제외하고, '서양'이라 불리우는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 바로 음식일 것이다. 고추장과 김치를 곳곳에 들고 다니면서 호텔에서 냄새나게 한판 펼쳐놓는, 그런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힘들지만, 수많은 그 나라의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내가 지금 김치찌개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도 참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미국에서 살면서 좋은 점은, 특히 뉴욕에 살면서 좋은 점은 결국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요리가 한데 모인다는 것. 그래서 내가 매일 한국음식을 해먹는다고 해도 그리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스토리아만 해도 그렇다. 주변에 그리스인, 이탈리아인, 일부 브라질사람 그리고 이집트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그리스 요리점, 이탈리아 식재료점, 브라질 음식점과 이집트 카페 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니 내가 김치 냄새 좀 낸다기로 투덜대는 사람이 있을리가.


또한 그렇기 때문에, 뉴욕에 놀러오면,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맛보기를 권하고 싶다. 어제 나는 시카고대학에서 중국과 관련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편의 친구가 뉴욕에 놀러와 함께 가보자고 권유한 덕분에, '인디안 차이니즈' 요리, 인도스타일의 중국음식을 먹게되었다.


하긴, 중국 요리는 지역마다 그 스타일이 다 다르기도 하지만, 외국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이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음식 스타일을 변형하기 때문에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의 자장면과 탕수육을 결코 중국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남편이 한국에서 "나는 중국요리 정말 좋아하는데, 한국 중국요리는 잘 못먹어." 라고 해서 굳이 이태원에 있는 홀리차우를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남편은 자장면을 먹지 못한다. 아쉽게도!)

미국식의 중국요리 중에 남편이 꼭 시키는 것이 있는데 크랩 랑군(Crab Langoon)이라고, 게살과 치즈가 들어가있는 군만두 스타일의 요리가 있다. 타이레스토랑에서도 팔아서 남편은 그것을 애피타이저로 곧잘 시켜먹는데, 한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여하튼, 중국사람들은 발이 넓어, 인도에서도 인도향신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중국요리를 선보였나보다. 캘커타를 위주로 해서 이런 인도스타일의 중국요리가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이 음식이 뉴욕에서도 이슈가 되는 모양이다. 우리가 어제 찾은 '탕그라(Tangra)'라는 레스토랑 이외에도 뉴욕에 몇군데 더 있다.



우리가 찾은 이 레스토랑은 퀸즈의 서니사이드에 위치하고 있다. 서니사이드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동유럽인 등이 많이 모여사는 동네로 알려져있는데, 그래서인지 괜찮은 아시아 레스토랑을 많이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려한 스타일의 내부에서는 인도 채널의 TV를 감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음식에는 이렇게 소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중국 허브와 인도 향신료를 섞어 만든 '탕그라 마살라'가 이 레스토랑의 이름일 정도로 유명한 듯.



레스토랑의 룰이 적혀져있는 게 인상적이다. 친절하고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랄까 :) 한 명당 10불 이상은 먹어줘야 하고, 중간에 주문을 변경하는 경우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크레디트 카드는 두 사람의 것만 나누어서 받을 거고(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자기가 먹은 것을 자기가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는 완벽한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이 아니니까, 자기가 알아서 해라... 라는... 내용.  이건 인도스타일일까, 중국스타일일까, 미국스타일일까?


파니르 프라이드 완탕. 완탕은 중국 만두일 거고, 파니르는 인디안 스타일 치즈이니,

꼭 시켜야할 애피타이저같아서 주문. 정말 인디안플레이버가 가득한 중국요리였다. 옆에 있는 소스는 랏미로, 큐민 향이 나는 브라운 소스.


프라이드 된 치킨 다리. 네명인데 여섯개여서 나중에 서로 눈치를 보며 먹고 싶어했다는.





정말 맛있었던 프라이드 라이스. 인도 향신료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게 의외로 참 잘 어울렸다.



두부요리



파니르(인도 치즈)와 베지터블


실제로 생각보다 더 맛있었고, 인디안 향신료가 들어가있어서 인도의 향미가 충분히 들어있었지만, 또한 그리 이국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먹기가 좋았다. (강추!)


이 곳은 아마도 인도 사람들의 종교적인 색채로, 할랄 음식만을 판매하는 곳이었고, 돼지고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염소고기 메뉴가 따로 있었다. 한 번 시식해보고 싶었지만, 함께 한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주문은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몸보신을 위해서라도 남편과 다시 찾아 염소고기도 먹어보고 싶다는... :) 맛이 어떨까? 양고기처럼 냄새가 좀 나려나?




Posted by NYCbride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최근들어 사람들이 '힙스터'라는 단어를 즐겨 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첫 '힙스터'라는 단어는  모 그룹의 앨범 홍보보도자료에서였는데, 고급스러운 강남 클럽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세련된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강남 힙스터들을 열광시킬 음악'이라는 문구가 (나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힙스터'라는 단어를, 무언가 세련된 놀이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청담동 카페에 천편일률적인 루이 비통 가방을 들고 청담동 며느리처럼 웨이브 머리를 하고 단아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크네(Acne) 옷이나 최근 화제가 되는 편집 매장의 의상을 골라입고, 혼자 살고 있는 집에는 적어도 소파나 스툴 정도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가구점에서 구입할 줄 아는, 가로수길의 패셔니스타....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힙스터'라는 단어의 의미는 보다 서브컬처와 맞닿아 있다. 인디 영화를 즐겨보고, 인디 뮤직을 즐겨 들으며, 업스케일의 클럽보다는 문화적이고 아티스틱한 분위기의 바와 클럽에 모이며, 하이엔드 고가 명품(이라고 한국에서 생각하는) 디자인보다는, 자유로운 철학을 가지고 서브컬처 예술을 이해하는 디자이너들을 지지하는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고 스스로 트렌드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패셔니스타라기보다 너드(nerd), 긱(geek)에 가까운 그들의 삶의 스타일은 처음에는 '힙스터'라고 불리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보헤미안'으로 불리기도 했다. 21세기가 되면서 미국에서 '너드'들의 삶은 보다 '쿨(Cool)'한 삶으로 각광받게 된다. 무언가 집착하는 취향 하나 정도는 제대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만든 힙스터게임

당신은 힙스터인가? 게임

1. 나는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을 좋아한다.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지금 현재 미쳐있다. 나는 판타지 너드다.  yes or no

2. 미드 중에서도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미드를 좋아한다. yes or no

3. 나는 가끔 미국 피치포크 웹사이트에 들어가 미국의 인디 뮤직 트렌드를 확인한다. 남들보다 먼저 인디 록밴드를 알고 얘기하지 않으면 못견딘다. yes or no

4. 나는 베지테리언이다. 혹은 베지테리언이 될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yes or no

5. 환경친화적인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다. yes or no

6. 강남의 멋진 클럽보다 해방촌이나 경리단 길에 놀러가는게 더 좋다. yes or no

7. 집에서도 나는 핸드 드립 커피를 직접 해마신다. 스타벅스 커피는 맛이 없어서 직접 커피를 볶는 로스터 가게로 향한다. yes or no

8. 내가 즐겨 찾는 빈티지 스토어가 하나 이상 있다. yes or no

9. 남자의 수염을 인정할 수 있다.  yes or no

10. 한 때 인디 밴드를 만들거나 단편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yes or no


위의 답에서 5개 이상 예스라면 당신은 힙스터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같은 판타지 문학에 제대로 취한 판타지 너드 이거나(미국에서 <왕좌의 게임>에 대한 20-30대들의 열광은 한국에서 <설국열차>를 기다리는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 피치포크(미국의 인디음악 웹 매거진)를 애독하고 새로 나온 작은 밴드들까지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음악열광마니아이거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톨스토이보다 못한지에 대해 미친듯이 떠들거나 헤밍웨이와 스콧피츠제럴드 중에 하나에는 편을 들 줄 아는 문학적인 심미안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기타든, 드럼이든, 혹은 외국의 독특한 악기든 연주할 줄 알고,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아가 아마추어 밴드를 만들어볼까 논의를 하거나 자신의 사진, 글, 그림 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준아티스트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통 여기에 속한다.  


사실 미국에서 '힙스터'라는 단어는 그리 긍정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힙'이라는 단어가 너무 트렌디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미국의 힙스터들은 자신들이 트렌드를 따라가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트렌드마저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그들이기에, '너 힙스터구나~!'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기분 나빠할 것이다. 차라리, '너 '너드'구나!' 말하는 것이 칭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몇년전부터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TV프로그램 <Portlandia>는 '힙스터'들의 지적 허영이나 스타일 허영에 대해 꼬집어 코믹하게 만들고 있다.


일단 포틀랜드라는 지역적인 분위기를 설명하자면...오레건에 위치하고 있는 이 도시는 일단미국 서부라는 아름다운 지리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고, 정치적으로 보다 진보적이며(미국의 서부는 마리화나를 덜 엄격하게 취급하고 있다-캘리포니아의 경우 피우는 사람들을 경범죄로 거의 취급하지 않을 정도, 아마도 60년대의 히피들이 가지고 온 분위기가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다) 세금 부과율이 낮기(세일즈 택스가 없다) 때문에 미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포틀랜드에 가보면 20-30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음악문화('모디스트 마우스'와 같은 유명 밴드는 공원에서 합주를 할 정도이다, 나는 '페이브먼트'의 보컬이었던 스티븐 말커머스와 같은 클럽에서 공연을 봤다! 진짜다)가 잘 형성되어 있으며, 각종 독립영화들을 상영하고 독립잡지들을 소개하는 공간들이 많다(구스 반 산트가 이곳 출신이다. 말 다했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베이지역보다 훨씬 물가가 낮고 살기 평화로운 이 곳으로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추세이고, 그들은 환경친화적인 요즘 트렌드를 합리적으로 구사하려고 한다. 포틀랜디아는 이런 요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코믹하게 만드는, 어찌보면 한국의 트렌드보다는 조금 더 앞서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 로컬음식에 집착하는 이야기, 너보다 내가 먼저 본  책에 집착하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홍대 앞의 서브컬처 문화집단의 허영심을 재밌게 꼬집는 그런 내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포틀랜디아>에 나왔던 유명한 에피소드인데, 치킨 요리를 먹으면서 이것이 로컬음식인지, 어떤 오가닉인지, 얼마나 넓은 농원에서 자랐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웨이트리스는 닭의 이름이 적힌 사진까지 가져와서 보여주는 어이없는 코미디. 미국 힙스터들이 지나치게 '오가닉'에 매달려서 까다롭게 구는 장면을 꼬집은 것이다.


이것은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DJ를 한다고 나서는 결국 DJ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너도 나도 아티스트이고, 나도 뮤지션이고 너도 뮤지션인 그런 힙스터들을 꼬집는다. 동네 홈리스마저 디제잉을 하고 있는 그런 동네에서 겨우 벗어나 집에 돌아왔지만,..... 어머니가 히트다.

솔직히 내가 몇년은 해방촌에서 살면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이 모두 이런 스타일. 다들 뮤지션이고, 음악인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90년대 스타일이 이들의 진정한 트렌드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진정한 포틀랜드 스타일, 힙스터의 삶의 방식을 정의한다.

"대부분 야망이 없었어. 뭐가됐든 직업이 없고 일을 해봤자 주중에 몇시간 커피숍에서 알바하는 그런거? 그런 90년대의 꿈이 포틀랜드에 아직도 살아 있어. 포틀랜드는 젊은이들이 은퇴해서 가는 그런 동네야!"

그리고 안경낀 여자들이 '핫'한 스타일이라고 외친다.




윗 비디오가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자 <포틀랜디아>의 새로운 시즌은 이것을 스스로 패러디한 1890년대 스타일을 실현하는 포틀랜드이야기를 다루는 

1890년대 꿈을 이야기하는 아래 비디오가 나온다.



90년대에 다들 피클을 만들고, 직접 맥주를 만들어내던 시절을 기억해? ...

너 지금 1990년대 말하는거야?

아니 나는 1890년대를 말하는거야.


너 지금 스타일 너무 1920년대야. 이걸 써봐.



여튼 포틀랜디아는 이렇게 힙스터들의 삶을 재미있게 다루면서 오히려 더 많은 힙스터들을 양산해냈는데.


자, 우리 시아주버님이 운좋게 '포틀랜드'에 사신 관계로 나는 이 곳을 놀러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우리 시아주버님의 사진을 살짝 올려보자면....




우리 시아주버님이 포틀랜드의 힙스터들의 스타일을 대변한다. 그는 그래픽디자이너인데, 강아지를 키우면서, 환경친화적인 음식을 먹으며, 아침마다 포어오버(핸드드립)커피를 마시고,....

무엇보다 패션 스타일을 주목하시라.

저런 덥수룩한 수염은 대부분 남자들의 스타일이고, 90년대 그런지 스타일로 의상을 입으시고, 안경이 스타일을 완성하는.....!



포틀랜드 스타일을 완성시켜주는 포틀랜드의 빈티지 스토어.

이런 선글라스! 스케이트 보드를 재활용해 만든 선글라스.


<포틀랜디아>는 책으로도 판매되고 있다!


<포틀랜디아> 새로운 시즌을 홍보하는 카페 커피 슬리브.



미국의 3대 힙스터 도시로, 뉴욕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그리고 시카고의 위커파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미션구역(예전에는 헤이트 애쉬버리)를 보통 꼽는다. 새로운 트렌드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빈티지 스토어와 신인 디자이너, 그리고 음반가게가 많은 이 동네들은 아래와 같다. 




뉴욕 윌리엄스 버그 근처에 세워진 수많은 자전거들. 윌리엄스버그 힙스터들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빈티지 스토어.




샌프란시스코 미션구역.



미션구역에 위치한 Thrift스토어. 이런 비영리기업이 많다.



샌프란시스코 유명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는 1890년대 스타일의 힙스터?!





시카고의 위커파크 끝에 위치하고 있는 레클리스 레코드 안의 전경


시카고 위커파크도 점점 크기를 넓혀서 이 곳은 조금 업스케일 느낌의 길이 된 동네다. 벅타운이라고도 불리운다.



시카고의 빈티지 가게.

시카고의 링컨파크 근처의 빈티지 스토어



지금, 미국에서는 이러한 힙스터의 삶 역시 트렌디하다고 웃으며 코미디를 만들 정도인데, 어떤 의미에서 나는 한국에서도 힙스터가 트렌디함의 중심, 메인스트림의 중심에 섰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재활용이 중요하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는 안되고, 개개인이 모두 아티스트이며, 비싼 자동차를 굴리는 대신 예전 고물 자동차를 되찾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쿨'한 트렌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Posted by NYCbride

이제 뉴욕에서 살기 시작한지 몇달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한 때 패션잡지에 다녔던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친구들이 놀러온다고 하면, 어디가 '쿨한 공간'인지, 어디가 먹을 때 좋을지, 분위기가 좋은지, 그리고 특히 '쇼핑'은 뭘 하는게 좋은지, 어디서 하는게 좋은지 알려줘야할 것 같은 그런 직업정신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이상 쇼핑에 관심이 없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아, 나의 돈이 나만의 돈이었던 싱글시절이 가끔씩은 그립다....! :))데이트를 하다가 옷가게에 들르는 일은 점점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매일 이렇게 블로그를 업데이트 하는 척 하며, 아마존, 블루밍데일, 노드스트롬, 등등의 백화점 사이트에 눈도장을 찍는 혼자만의 '아이쇼핑'을 잊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데리고 가도 나는 죄책감이 없고 그 역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공간이 있으니, 바로 벼룩시장이다. 특히 맨하탄의 헬스 키친에 위치한 벼룩시장은 앤티크 가구, 카메라 등부터 시작해서, 빈티지 옷과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없는게 없으니,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몇시간이고 걸어다니는 재미가 있다.

남편은 오래된 카메라와 전축, 그리고 잔뜩 쌓아놓은 중고 LP판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고, 나는 겨울 코트에 달기 위한 빈티지 브로치를 찾느라 서로를 잃어버리곤 했다.



일요일, 맨하탄에 위치한 헬스 키친. 쇼핑객과 판매하는 셀러들을 위해 길을 막아두고 있다. 타임아웃이 선정한 최고의 앤티크 퍼니처 스트릿이 바로 이곳.


토요일과 일요일날 오픈을 하기 때문에, 여행오는 사람들이라면, 느릿느릿 브런치를 먹고 어제 마신 술 해장겸 한 바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을 한바퀴 돌고 나면, 한국에서 동네 카페를 내는 사람들이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이곳에서 작고 귀여운 소품을 많이 사갔을지 알 것 같다. 

예전 첼시에 위치하고 있었던 아넥스 빈티지 마켓이 이곳으로 옮겼기 때문에 아직도 예전 가이드북을 보고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헬스키친에 가면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타임스퀘어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이 곳으로 천천히 걸어와도 좋을 것 같다.


위치: 9Av와 10Av 사이, W39 St.에 Hell's Kitchen Flea Market이 위치하고 있다.

오픈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Posted by NYCbride

미국 사람들은 비영리단체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다. 얼마전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갔을 때, 남편의 의사친구가 공항까지 우리를 마중나왔다. 의사인 그는 벤츠를 끌고 나왔을까, 아우디를 끌고 나왔을까? 그는 비영리단체에서 운영하는 자동차를 빌려 타고 나왔다.

"샌프란시스코가 그리 큰 도시도 아니고, 어디 갈 때는 자전거를 이용하면 되고(이렇게 언덕이 많은 지형인데도 샌프란시스코의 자전거족은 미국 최강이다. 그래서 지다가다보면 버스 앞에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곳곳에 자전거 도로가 잘 구현되어 있는 것도 볼 수 있으며 카페나 레스토랑 앞에는 자전거거치대가 대부분 마련되어 있다), 버스나 지하철도 있는 걸 뭐. 공항에 이렇게 마중을 나와야 하거나 장을 볼 때는 이 단체를 이용해. 동네마다 이 단체의 자동차 주차장이 있는데, 인터넷으로 예약을 한 후, 자동차를 이용하고 다시 시간에 맞게 근처 주차장에 반납하면 되지. 솔직히 이런 도시에 살면서 자동차가 있어봤자 보험료에, 주차비에, 귀찮잖아. 일주일에 한 두시간 필요할 때가 태반인데. 게다가 비영리 기업이잖아."


한국에 비영리기업이 얼마나 많을까? '비영리기업' '비영리단체' 단어는 많이 들어봤는데, 솔직히 한국에서 그런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거나 이용해 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시민단체들이 이러한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텐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단체들-좌파 뭐 그런 식의 인식이 이상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대부분의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단체에는 정치색의 안경을 쓰고 보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도 많다. 


어쨌든 오늘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뉴욕의 비영리단체(Non-profit)가 운영하고 있는 '루프톱 영화제'이다. 이 단체의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자신의 단편영화를 사람들과 함께 볼 장소를 물색하다가 맨하탄 자신의 집 옥상에서 이 영화상영을 시작한 마크 엘리야 로젠버그라는 청년에 의해 발족(?)된다. 수백명의 사람이 몰려들었고, 이는 이내 유명해져서 결국 집주인에 의해 쫓겨나기에 이른다. 그는 장소를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미국 3대 힙스터 지역중의 하나로, 위험한 브루클린의 이미지를 새로운 트렌드의 도시 이미지로 바꾸어 놓았다) 로 옮기게 되고, 영화와 새로운 문화, 서브컬처에 목말라하던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다. 지금은 브루클린 뿐만 아니라, 맨하탄, 그리고 이곳 퀸즈의 아스토리아에 위치한 소크라테스 미술관 야외마당까지 장소를 넓혀 매일 뉴욕시의 동네들을 돌아가며 순회하고 있다.



영화제를 향해 걸어가는 길. 강 너머에 맨하탄의 높은 빌딩들이 보이시나요?



가는 길에 보니 이렇게 카약 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드디어 석양이 질 무렵, 소크라테스 미술관 야외 공원에 도착!




특히 한 영화를 가지고 동네를 돌아가며 일주일 동안 내내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소마다 특별한 기획을 가지고 영화를 상영한다. 아스토리아의 소크라테스 미술관에서는 매주 전세계의 영화를 상영하는 기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으로 시작해서, 멕시코, 차드, 한국(7월 24일에는 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를 상영하였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에는 루마니아의 <도메스틱>, 그리고 어제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슈가>, 다음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The Gleaners & I>를 상영한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나라에서>가 7월 24일 상영되었다. 한국 음식도 판매했겠지? 놓쳐서 아쉽다!

우리는 7월 31일 루마니아의 영화 <도메스틱> 관람.




재밌는 것은 매주 새로운 나라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그 나라의 음식을 함께 판매한다는 것이다(대부분의 뮤직페스티벌은 입장할 때 가방검사를 하고, 물 한병도 반입시키지 못하게 하는데, 그래서 페스티벌 내에서 비싼 음식과 음료를 사마셔야 한다. 지난번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서머 스테이지 <쉬 앤 힘> 콘서트에서 8달러의 맥주 한잔...그러나 이 곳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오픈되어 있다. 먹고 싶으면 사먹으면 되고, 자신이 샌드위치를 싸와서 먹어도 된다. )

우리는 예전 서머 스테이지의 가슴 아픈 맥주 사연이 있어서, 일단 처음 가는 이 곳에 음식은 싸가지 않기로 했다. 혹여라도 입구에서 빼앗길까봐. 그러나 앞에 앉아계신 스태프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체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안에서는 루마니아 음식을 판매하니까 드셔도 되고, 저 옆에 코스트코에 가서 사와도 되고. 안에서는 알콜 음료를 팔지 않으니 알아서 가져오셔야 해요."'

이 미술관이 바로 옆 코스트코에 있는 관계로, 우리는 코스트코 옆에 있는 창고형 와인숍으로 달려가 두 병의 와인을! :)



루마니아의 음식이라고 하는데, 캐비지롤, 아마도 양배추 안에 다짐육과 채소를 넣고 잘 쪄서 만든 것 같다. 맛이 좋았고, 옆에는 소시지를 구워 판매. 남편이 사진찍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난도질. 플라스틱 박스 안에 든 것이 좀 찔려서 다음에는 꼭 음식을 챙겨와야겠다고 마음먹음.



와인이 자꾸 움직여서... 남편의 큰 신발 안에 잠시 넣어두... 스스로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 뉴욕의 인디 뮤지션들이 음악 연주를 먼저 한다. 아무래도 해가지기까지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밤 8시가 되어도 조금 훤하니 말이다. 역시 요즘 음악 대세는 '포스트 포크'임이 확실하다. 남편이 옆에서 중얼 거렸다 "요즘 밴드들 노래는 왜 다 '멈포드 앤 선스(Mumford & Sons)'같이 들리지? 그래도 노래 진짜 좋다."





그리고 해가 드디어 뉘엿뉘엿 넘어갈 때, 이 곳 뮤지엄과 이 단체의 직원이 나와서 이 영화제의 취지를 설명한다. 이미 입구에서도 우리는 확인했지만, 이 영화제는 유료가 아닌 무료이기 때문에 뜻을 가진 사람들의 기부금으로 이 행사가 운영된다. AT&T같은 큰 통신회사가 이 곳의 가장 큰 지원 기업인 것 같고, 이외에도 다양한 기업이 시민을 위한 문화행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개인적인 서포터들 또한 많아서 영화를 시작하기 전 그들의 이름을 스크린에 올리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 이 영화제가 특히 좋았던 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일반 시민들에게 다양한 나라의 조금 덜 알려진 영화들을 소개 한다는 것, 그리고 무료로 시민들의 문화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인 뜻을 이해하고 선뜻 기부금을 내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뜻을 진행하는 많은 단체들이 있지만, 기부금을 얻어내기가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되로 주고 말로 받으려는 기업들의 '갑의 정신'이 있고, 정치성을 가진 영화를 상영하려면 정부의 눈치도 봐야하고. 뭐 그런 모양이다.

대기업보다는 비영리단체를 이용하려는 시민의식,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하는 기업인들의 의식이... 우리에게도 곧 생기겠지?




해가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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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이미 나의 한국 드라마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드라마만 봐도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재벌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 것 같다. 이제는 재벌 2세 실장님, 재벌 2세 본부장님이 착한 캔디인 그녀를 사랑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도 같고 말이다.

작은 땅덩이 하나라도 더  벌 것을 찾기 위해 빵집에 투자하고, 동네 슈퍼까지 속속들이 파고들며, 카페를 하나라도 더 오픈하지 못해 안달이고, 이미 자리 잡은 아기자기한 동네 구멍가게들은 대형 회사들의  등쌀에 떠밀려 가로수길과 삼청동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고객들의 입장에서야, 큰 회사들이 편하다. 재래시장 할머니가 채소를 오래된 냉장고에서 꺼내 팔 때, 마음은 아프지만 옆에 있는 큰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할머니는 장사가 안되니 신선한 제품을 팔 수가 없고, 신선한 제품이 없으니 우리는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린다.


반면에 요즘 미국에서는 파머스 마켓이 이제 더이상 유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일상으로 들어와버렸다. 이곳에서는 동네에 유명한 체인 슈퍼마켓에서 음식재료를 구입하는 것은 한 수 아래로 여겨진다. 건강한 생활을 하지 않는 것처럼, 패스트푸드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죄책감까지...(라고 하면 조금 과장이긴하지만)

'홀푸드(The Whole Food)'라는 미국의 유명 오가닉 식재료 전문 마트를 찾아가거나, 파머스 마켓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 때문이다.

뉴욕의 유니온 스퀘어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마다 큰 장이 선다. 동네에 공원이 있는 곳에서는 주말이나 주중 오후에 도시 근처의 농부들이 자신의 깨끗하고 신선한 채소, 과일, 심지어 잼과 피클을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로컬 푸드의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곳곳에서 말하지만,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아마 재래시장을 밀어내고 끊임없이 올라가는 높은 대형마트 건물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젊은이들이 동네 옥상 텃밭을 일구면서 환경단체의 힘을 얻어 시작한 몇몇 파머스 마켓이 어느정도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유행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작아보이기만한다. ('홍대 텃밭 다리'나 '마르쉐'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시도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나는 놀거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흥분되는 일인라는 건  분명하다. )

 이를 죽어가는 재래시장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그런 것이 수반된다면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재래시장이 오래된 채소와 과일을 냉장고에서 꺼내는 대신, 지역의 농부들과 연계를 꾀하고 중간 유통 루트를 통하지 않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면...말이다.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리집 근처에도 매일 일요일 재미있는 파머스 마켓이 열린다. ‘마켓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은, 그저 달랑 하나 테이블에 매주 그들이 텃밭에서 거둔 채소를 판매하고 있지만, 매일 장을 보기 위해 맨하탄까지 가기도 뭣하고, 일요일 아침마다 산책겸 남편과 함께 들르기에 정말 즐거운 곳이다. 아직 이 레스토랑의 주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한국인 셰프로 알려져 있는데, 아메리칸 브런치를 조금 재미있는 방법으로 판매하는 나름대로 아스토리아에서는 잘 알려진 힙스터레스토랑이다) ‘킥쇼( KICKSHAW)’라는 이름의 이 브런치 가게는 일요일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이 젊은 농부들의 테이블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번에는 싱싱한 브로콜리를 큰 잎까지 함께 판매해서, 브로콜리는 브로콜리대로, 브로콜리 잎으로는 피클을 해서 먹었다. 이번에는 케일과 색색의 토마토, 체리토마토, 다양한 고추를 판매했는데, 역시 완벽한 오가닉으로 일궈진 이 채소들은 벌레가 먹은 흔적도 있고, 모양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10시가 넘어가면 대부분의 채소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날도  아침 일찍 서둘렀다. 그들은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오픈해, 매일 어떤 식으로 채소가 길러지고, 어떤 채소를 다음주에 판매하게 될지 이 곳 업데이트 하며 고객과의 히스토리를 함께 마련하고 있다.

파머스 마켓의 장점은 그런 것이다. 내가 지금 구입하고 있는 이 채소가 어떻게 길러지고, 어떤 방법으로 내 입으로 들어가는지 신나는 이야기를 생산자와 함께 공감할 수 있다는 것. 로컬푸드를 통해 멀지 않은 곳에서 신선한 채소를 구할 수 있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만큼 로컬푸드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곳은 땅이 지나치게 넓기 때문에 실제로 이러한 에너지 소비 및 방부제 사용이 상당히 큰 문제가 된다.



지난 일요일, 레스토랑 한 켠에 마련된 파머스마켓 스탠드를 찾아갔다.


한국에서는 로컬푸드’(서울안에 있는 로컬푸드를 찾아라!는 좀 어폐가 있어보인다) 라는 의미보다는, 대기업의 유통을 통하지 않고, 직접 가난하지만 진실한 농부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언니네 텃밭에서는 시골에서 남는 짜투리 땅이나 농사를 쉬고 있는 땅을 이용해 먹거리를 키우는 분들의 제품을 수합해 도시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있다. 예를 들면 2주일에 한번씩 채소를 받는 경우, 어떤 채소가 올지 알수가 없지만, 그 철에 맞는 좋은 오가닉 채소를 보내고, 할머니 혹은 담당 농부가 이 채소를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따뜻한 메시지도 적어보내는 식이다. 몇년 전에 이 사이트를 알게 됐는데, 지금은 훨씬 커진 것 같아 보기 좋다. 또한 이 회사는 사회적 기업이니 엉뚱하게 재벌분들의 주머니에 돈을 꽂아드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언니네 텃밭 http://www.sistersgarden.org/

 

뉴욕 맨하탄 시내에는 정말 재미있는 숍이 또 하나 있다. 이탈리(EATALY)라는 곳이다. 물론 ITALY와 발음이 같다는 장점을 이용해 ‘EAT’을 집어넣었다. 이 곳은 이탈리아 델리 스토어 및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곳이다. 숍 안에 들어서면 이탈리아의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피자집, 파스타집, 젤라또집. 등등. 그리고 그 음식가판대들 사이로 이탈리안 음식재료들을 구입할 수 있다. 좋게 말하면, 이탈리아 재래시장의 시끄러운 분위기, 음식도 먹고, 술도 마시며, 장도 보는 그런 무드를 고스란히 옮겨온 것이다.


맛있는 빵집도 있다.



파스타 코너. 생파스타부터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가 다 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서 사람들은 식사를 하고 이탈리아 와인을 마신다.



사실,  프리미엄 마켓이 청담동에 두 개나 오픈했는데, 모두 이러한 미국 시장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아프지만, 이 분위기가 모두 우리의 예전 재래시장 모습이 아니었나? 왜 우리는 우리의 시장문화는 그들의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얼마전, <김치 크로니클>이라는 TV쇼에서 그 유명한 셰프 장조지와 그의 와이프조차 한국의 시장에 열광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매번 무너뜨리고, 다시 돌이켜 세우느라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결국 트렌드에 맞추어 재벌에게 이 아름다운 재래시장의 미덕을 넘겨주지 말고, 사회적 기업이든, 시에서든, 동에서든 발벗고 나서서 조금만 활로를 모색하면 좋겠다.

이건 그냥 경제도 모르고, 정치도 잘 모르는 내가 그저 상상으로 생각해 봤던 건데, 얼마전 망원동 시장 관련한 사건 때도, 나는 만약 정부에서 나서서, 그들과 새로운 유통활로를 함께 모색하고  새로운 로컬푸드 시장으로 혹은 파머스마켓 시장으로 변환을 머리를 맞대로 논의했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큰 마트에게 자꾸 그런 자리를 내어주지 말고 말이다. 망원동이면,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의 동네인데.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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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살 때는 미국영화 속의 배경도시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 도시의 특성도 잘 몰랐고, 어렴풋이 느껴봐야 동부와 서부가 다르다 정도라고 해야할까. 뉴욕, 샌프란시스코 정도만 귀에 들어왔을 정도였다는게 대부분 한국사람들의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와서 살다보니, 내가 좋아했던 미국 영화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장소가 현지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재미있게 느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현재 뉴욕시의 아스토리아에 살고 있다.

아스토리아가 어떤 동네냐 하면,




그렇다 행정구역상으로, 퀸즈에 위치. 맨하탄에서 강을 건너면 바로 있는 동네로 따라서 끔찍한 맨하탄의 물가를 견디지 못한 출퇴근족이 많이 살고 있고, 그리스 사람과 이탈리아 이주민들이 정착한 동네이며, 할리우드가 발전하기 전, 그리고 지금도 뉴욕의 영화를 만들던 스튜디오가 한켠에 몰려있기도 하다. 

사실 남편과 나는 브루클린의 파크슬로프 근처에 살기 위해 집을 구하러 다녔었는데(아무래도 퀸즈보다는 훨씬 젊음의 냄새가 흠뻑!) 역시나 집세 경쟁에서 완승을 거둔 아스토리아로 선택하고야 말았다(한달에 백만원이 더 절약되니 왜 아니겠나).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돌아가신 노라 애프론 여사의 생전 마지막 작품. 잠시 노라 애프론을 설명하자면,<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유브갓 메일>을 만들었던 여자감독으로, 로맨틱코미디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 분이시다. 몇달전 이곳 브로드웨이에서 역시 톰행크스(!)가 주연을 맡고 그녀가 극본을 썼던 연극 한 편이 큰 흥행을 하며 상연이 되었더랬다.

하고싶지 않은 일에 치이며 하루하루 우울하게 보내는 줄리,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힘이 빠지는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가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던 전설의 셰프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을 가지고 매일 하나씩 요리를 만들며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리고 유명 블로거가 된다.


인디안 레스토랑 2층에 위치한 집 때문에 매일 투덜대던 그녀가 살던 곳이 바로 아스토리아였다.. 뭐 이 말씀.




그녀 뒤로 강이 있고 맨하탄이 있다. 이곳은 바로, 퀸즈의 아스토리아! 우리집에도 이렇게 루프톱이 있으면 좋으련만.


친구들은 다 승승장구인데, 나는 지금 무얼하나 싶은 젊은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줄리의 모습이다.


전설의 셰프 줄리아 차일드


그녀는 요리블로그를 운영하며 점차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게 된다.



사실 이 동네에 있다가보면 맨하탄 출퇴근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5시반~6시에는 지하철역부터 우르르 넥타이부대들이 걸어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다행히 우리는 인디안 레스토랑 2층에 살고있지는 않고, 대신 둘이 살기에는 넉넉히 넓은 주방 덕분에 나 역시 줄리처럼 요리를 자주 하고 있기는 하다. 줄리처럼 엄청난 요리는 하지 못하지만, 한국 요리를 미국에서 해낸다는 건 그리 쉬운일만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 슈퍼마켓이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매일같이 30분넘는 거리에 있는 한국 슈퍼에 가기는 쉽지가 않으니까. 그리고 또, 사고 싶은 것은 '냉동'으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이런 음식을 만들었다.


1. 한국요리


동네에 두반장 판매하는 곳이 없어서 된장과 고추장을 적절하게 섞고, 거기에 고춧가루로 고추 기름을 내서 마파두부 덮밥을 만들어봤다. 대략 맛이 나서 일단은 합격. 그러나 남편이 미묘한 차이를 감지. 착한 남편이지만, 외국인인 남편이 모든 아시아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라고 애원하는 메뉴가 있다. 마파 두부 덮밥, 카레 덮밥, 제육 덮밥 등.




나는 물냉면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비빔냉면을 좋아한다. 국수는 한국마트에서 사면 되는데, 이 절임무와 오이를 만드는 건, 집에서 일일이 해야만한다는 번거로움이. 나름 그럴듯해보이기는 한다....?! 그죠?



오징어 무국. 한국 무를 잘 팔지 않고 오징어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남편없이 혼자 밥을 먹을 때를 대비해서 저장음식들을 많이 해놓는다. (남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멸치볶음과 장조림. 그리고 물론 구입한 김치와 깻잎. 여기 배추는 한국에 비해 질기다. 그래서 아직은 자신이 없다...



물냉면. 드디어 해먹었다! 국물이.. 아직은... 음. 한국에서는 물냉면을 굳이 해먹지 않아서 몰랐는데, 여기 마트에서 보니 '냉면용 다시다'가 있더라. 얼마전 유명 한국 냉면집에서도 '다시다 육수'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고 참.. 씁쓸했었는데. 심지어 그 다시다 용량을 어떻게 하는지 그 비법을 돈주고 판다고 한다.




내 여름 친구, 손혜영표 비빔국수. 나는 총각무가 적절하게 익었을 때, 비빔국수를 해먹는다. 부모님하고 같이 살 때, 내가 저러는 것을 본 우리엄마가 김치 좀 그만 넣으라고, 짜다고 면박을 주셨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어쨌든, 우리나라 국수 요리의 핵심은 바로 저, 삶은 계란! 난 반쪽 말고 하나 다.



김치찌개와 푸릇푸릇한 나물들로. 나중에 남은건, 혼자 비빔밥.


닭칼국수를 해보았다. 뭐 레시피들 다 많은데 냉장고에 있는게 애호박이랑 닭가슴살밖에 없어서.

닭가슴살칼국수.



미국에서는 신선한 해산물을 사기가 쉽지가 않다. 미국 사람들은 주로 고기만 먹는 듯. 구입하려고 해봤자 잘 손질된 연어나 농어 정도랄까? 고등어를 구해 조림을 하고, 남편이 없어 남은 음식 처리. 너무 착해졌다 손혜영. 네가 이렇게 머리와 꼬리만 먹다니, 남는음식 처리하는 가정주부가 되다니!





그러니까,  전날 먹은 삼계탕의 국물이 아까워 국물과 남은 닭을 냉장고에 두었다가 다음날 닭은 잘 손으로 발라내고, 찹쌀을 불리고 먹을 시간이 없어, 그냥 밥을 투척하여 만든, 이른바 해장식 급닭죽.



이 역시, 집에 남아있는 모든 재료를 (여기엔 샐러리, 당근, 브로콜리, 목이 버섯 등이 들어가 있다)  넣고, 굴소스로 간하고 녹말물을 넣어 대략 만든 해물잡탕.


네, 그렇습니다. 삼계탕입니다.

여름이 되니까 한국에서 2년간 살던 남편이 매일 삼계탕 노래를 불렀다. 한국마트를 뒤져도 황기 찾기가 쉽지 않다. 생밤은 물론 얼어있고, 그래도 열심히 국물을 내고, 삼계탕을 만들어보았다. 한국에서는 내가 삼계탕만큼은 자신있었는데....



우리집은 2층집이다. 1층에는 주인 아저씨가 산다. 뒷마당은 공동인데, 아무래도 주인아저씨가 사니까 가보지를 않는다. 몇주 전에는 주인 아저씨가 한아름 무화과를 안겨주셨다. 아이고,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무화과인데, 그리고 여자 몸에 그렇게 좋다는 무화과인데, 몇개 먹고 나니까 남은 아이들이 자꾸 물러지는 것이다.


그래서, 반은 무화과 청을 담고, 반은 무화과를 말렸다.



몇달 지나고 나면, 설탕 대신 음식 같은데 넣어 쓰기 좋겠지? 미국에 매실이 없다는 것이( 저번에 작은 박스에 파는 것을 봤는데 가격이 어마어마) 아쉽다. 다음주에는 코스트코에 들러 생라즈베리를 잔뜩 사다가 또 한 번 담을까 한다. 베리 종류를 청으로 담으면, 주스로 마시기도 좋지만, 칵테일에 넣어 마셔도 맛이 그만이다. 예전에 어머니가 담아주신 오디효소를 주스로 마신 적이 있는데, 친구들이 놀러온 김에 실험삼아 오렌지가 담긴 보드카에 넣어봤다. 점성이 달라서, 오디 효소가 밑으로 가라앉으며 데킬라선라이즈처럼 아름다운 색이 만들어지는데다 맛도 그만. 당신도 믹솔로지스트가 될 수 있다.




집에 음식건조기가 있어 가끔씩 이렇게 이용하는데 집에 남아있는 과일들, 딸기, 파인애플, 토마토, 바나나, 키위, 사과 등등을 가끔 쫀득쫀득할 정도로 말려서 술안주로 먹기도 하고, 샐러드에 넣어도 좋은 것 같다. 특히 무화과는 말리니까 달달하고 쫀득쫀득해져서 아침 저녁으로 하나씩 먹는다. 여자들에게 특히 좋다고 한다. 어머니 말씀이.


물론 나는 현재 다양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매일 먹고 싶을 때마다 한국 슈퍼에 가기도 그렇고, 몇가지 채소가 없으면 또 음식이 아쉽고 해서 몇가지 쌈채소를 키우고 있다. 보들보들한 한국식 상추, 그리고 깻잎과 쑥갓을 키우고 있다. 한국에서도 혼자 살 때 그랬지만 깻잎 몇장 먹자고 한무더기를 사면 나머지는 다 버리게 되는 경우가 흔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아직은 새싹의 단계이기는 한데, 조만간 무럭무럭 자라리라. (게다가 몇주 전 뉴욕 날씨가 36~39도를 넘나드는 이상고온을 기록해서, 이 아이들이 한동안 흐느적거리며 성장을 늦춘상태다)


2. 서양요리?@@


아무리 주는대로 잘 먹어주는 남편이기는 하지만, 외국분이신 관계로 우리는 가끔씩 이렇게 어정쩡한 서양요리를 먹기도 한다. 미국이 좋은 건, 외국 요리를 만들 때 재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루콜라 바질 이런것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이고, 저기 아직 정리되지 않은 전선에 포커스가 맞아버렸지만. 일단 루콜라를 사랑하는 나는 루콜라 샐러드와 크랩로제소스 파스타로. 이게 사진에 보기에는 이래도 나름대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은 기억만으로 대략 만든거라 맛은 괜찮았다. 일단, 제대로 맛이 나는 크랩미트를 구입하면 된다. 가짜 말고. 일단 나는 토마토 소스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올리브 오일에 다이스드 되어 있는 토마토를 팬에 넣고 토마토 주스가 나올 때까지 잘 팬프라이하다가 크랩미트를 넣고 화이트와인을 넣어 비린내를 제거한 후, 게살이 잘 익었을 때, 여기에 생크림을 넣고 잠시 끓여 소스를 만들었다. 뭐 대략 흉내는 내었던 것 같다. 물론 링귀니가 가장 잘 어울리지만, 스파게티가 남아서.



이건 무슨 예전 요리프로그램(한때 한국에서 밤새도록 올리브채널을 보았던 사람이 나다)에서 가르쳐줬던 내용대로 삼겹살을 팬프라이 한 후, 오븐에 넣고 오렌지를 글레이즈 될 때까지 소스를 만들어 바삭바삭하게 고기에 발라주며 구워봤다. 남편이 처음으로 "이건 레스토랑 수준이야!"라고  칭찬...(수줍) 사진들은 이따위지만


남편은 미국사람인데도 스테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꺼운 고기는 너무 고기를 학살하는 느낌이 있어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나. 그래서 한국식의 얇은 고기를 더 좋아한다.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건 오히려 내쪽. 스테이크를 팬에 구운 후, 오븐에 넣고 발사믹 소스를 만들어 야채와 함께 구웠다.


남편이 좋아하는 건 바질페스토 파스타다. 위스콘신출신이라 워낙 시푸드를 먹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은 듯. 나는 시푸드가 들어간 파스타를 좋아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양파도 잘 먹지 않아서, 샐러드처럼 파스타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바질 구하기가 쉬워서, 바질 한단에 잣, 그리고 그라나 파다노(파마산 치즈의 일종)치즈,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잘 갈아서 페스토를 만들어둔다. 급하게 배가 고플 때는, 파스타를 삶아 차갑게 해두고, 토마토, 그리고 구워 익힌 파프리카, 가지, 양파, 애호박등을 함께 넣고 샐러드처럼 섞어 먹는다. 옆에는 미국식 소시지를 잘 삶아 구워익힘.




마지막으로 오늘 점심을 함께 한 녀석인데 처음으로 '퀴노아(Quinoa)'라는 것을 구입해봤다. 조처럼 작은 곡식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어떤 식물의 씨앗이라고 한다. 몸에 좋아서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음식이란다. 나의 경우에는 냄비밥을 만들듯 센불에 끓이다가 약한불에서 오랫동안 물이 졸아들 때까지 10분정도를 끓이고, 이후 찬물에 씻어서 그늘에서 말려 준다음 샐러드에 섞어주었다. 이곳에서는 쿠스쿠스를 많이 사용해서 샐러드와 함께 먹는데, 아마도 '글루텐'알러지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글루텐이 몸에 좋지 않다고들 하여 빵이나, 파스타를 피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러한 새로운 곡식들을 이용하는 것 같다.

최근 서점에서 알랭 뒤카스가 낸 레시피 북을 보니 'Millet'라고 하는 곡식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한국에서 주로 많이 먹는 '조' '수수'등이다. 

나의 경우에는 이 퀴노아에 완두콩을 삶아, 콩 껍질의 질긴 곳을 제거하고 껍질까지 한꺼번에 넣어보았다. 여기에 토마토(방울토마토가 나을 것 같다. 물이 너무 많이 나온다. 집에 방울토마토가 없어서 토마토를 사용했더니 물이 나오는게 좀 그렇다), 당근, 파프리카, 그리고 치즈에 올리브 오일, 레몬즙, 소금, 후추, 그리고 큐민을 넣어 드레싱을 완성했다.

그래도 나의 육식 식성은 어찌할 수가 없어, 바게뜨와 함께, 오리 테린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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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 있는 것이 이럴 때는 참 갑갑한 것이구나 싶다. 모두들 그렇게도 기다리던 <설국열차>인데, 나는 개봉날짜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이 곳땅에서 각종 트레일러와 설국열차를 위한 특별준비영상들만 보고 있다. 이제부터는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리뷰와 뉴스들만 읽고, 김빠진 콜라 마시듯 <설국열차>를 보게되지 싶다. 


여하튼 그런 안타까움을 위로할만한 뉴스가 있었으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인 우디앨런의 <블루재스민>이 이곳에서 개봉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이라니.





생각해보면, 우디앨런의 영화가 모두 항상 다 재밌었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지난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비하면 다소 밋밋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소위 예술가들의 '과거에 대한 판타지'에  '유럽에 대한 판타지'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풍자해냈다면 <로마 위드 러브>는 그러한 재기발랄함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아, 그냥 우디앨런 'so so' 영화'라는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우디앨런이 대단한 점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꽤 괜찮은 영화를 만들 때가 아니라, 아쉬운 영화를 만들 때 오히려 그의 대단함이 느껴진다. 그는 '아쉬움'을 주기는 해도 '실망'을 주는 감독이 아니다.

우디앨런은 여전히 정력이 넘치도록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은 혜안과 위트를 가미하고 있으며, 슬럼프같은 것은 모르는 것처럼 '우디앨런'이라고 하면 생각할 수 있는 '기본'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로마 위드 러브>는 '기본은 했던 우디앨런'의 영화인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로마 위드 러브> 어땠어? 하면 '글쎄, 그냥 뭐 괜찮은 정도?'라고 대꾸할지언정 '아우, 영 아니었어' 하고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 번 보고 넘어가야 할 영화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런 아쉬움을 주는 영화를 개봉하고 나도, 그 다음 영화는 또 꽤 괜찮더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한 번 하향곡선을 그리고 나면 한동안 거기에서 거기인 철학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도, 우디앨런의 영화는 그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쉽게 그 다음 영화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우리를 웃긴다.



 <미드나잇 인 파리> 센 강 다리 아래서 연기지도 중이신 우디앨런 감독


     <미드나잇 인 파리> 사르코지의 아내인 카를라 부르니가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 그에게 20세기 초기 작가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면 그녀에게는 벨에포크 시대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우리는 현재보다는 과거의 것이 언제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혹은 현재시대의 아티스트를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누군가가 죽어야만 그를 추억하는... 동시대인에 대한 질투심이 있는지도.

 


<미드나잇 인 파리> 질다 피츠제럴드와 스코트 피츠제럴드. 그녀는 <설국열차>에도 나오더라.


<내 아내의 남자도 좋아>에서 조연으로 나왔지만 주연보다 강렬한 연기를 남겼던 페넬로페 크루즈가 <로마 위드 러브>에서는 몸을 파는 여자로 등장한다.


<로마 위드 러브> 둘의 조합이 은근히 어울리기도.


<로마 위드 러브> 우디앨런 역시 스스로 등장하셨다.




이번에 뉴욕에서 개봉한 <블루 재스민>은 우디앨런이 다시 자신의 고향 '뉴욕'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거기에 공동주연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캐스팅했다.

우디앨런의 영화세계에 있어 '뉴욕' 특히 '맨해튼'이 가진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최근 몇년 간 그는 조금씩 여행을 해왔다. 바르셀로나, 파리, 로마 등 유럽의 도시들을 보여주면서 그 도시가 가진 문화와 그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진 특성을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우디 앨런은 자신이 이야기해온 중산층, 혹은 예술가 집단의 허위의식과 삶의 태도를 풍자하는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 색다른 백그라운드를 이용해 자신의 영화를 'refresh'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 뉴욕의 깐깐하고 시니컬한 사람들의 분위기와 보다 릴랙스한 태도를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를 비교하고 거기에  미국 상류층과 미국의 서민층을 대비시킨다. 한나라에 사는 같은 가족이지만, 결코 피는 섞일 수 없는 그런 계층을.

<블루 재스민>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샤넬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을 걷는 그녀. 그녀의 삶은 순식간에 뉴욕 파크 애비뉴에서 차이나타운에 어울리는 여성이 되어버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녀는 과연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을까?

동생 진저마저 언니의 영향을 받아 조금 나은 남자를 찾아볼까 생각하게 된다. 이 남자 혹시 아시는지? 미국 시트콤 <루이>에 나오는 바로 그 루이.

알렉볼드윈이 지난 영화 <로마 위드 러브>에 이어 이번에도 우디앨런 영화에 등장.


부유한 남편을 만나 뉴욕 파크 애비뉴에 살며 인생이 한없이 고급스럽게 흘러갈줄만 알았던 재스민, 그녀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여동생 진저를 찾아온다. 집도 남편도, 돈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롭게 자신의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부유한 가정주부 역할이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두 자매는 입양이 된, 실질적으로는 피가 섞이지 않은 자매. 우아하고 아름다운 언니와 달리, 서민적이고 히피같은 성격의 여동생 진저는 일찌감치 언니만 편애하던 집을 뛰쳐나왔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남편과 사이에서 나은 아이 둘과 살면서 슈퍼마켓에서 일을 하고, 블루칼라인 남자친구와 앞으로 살림을 합칠 것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신경쇠약에 걸려 동생 진저를 찾아온 재스민은 여전히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 사사건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동생이 사귀는 남자마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툴툴댄다. 툭하면 스스로 혼자 중얼중얼 말하는 버릇까지 생긴 그녀, 그녀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마저 아슬아슬하게 만드는데. 도대체 뉴욕에서 재스민에게는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우디앨런에 대한 다큐멘터리 <우디 앨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서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한다. 여성들에 대한 심리, 여성들이 가진 힘, 여성들이 가진 섬세함에 대해 상당한 놀라움과 관심을 갖게 되었노라고. 실제로 우디앨런의 영화를 보면 여타 남성 감독들이 갖지 못한 여성 캐릭터의 다층적인 모습에 상당히 놀라게 된다.

여자들이 유치찬란한(하다고 남자들이 말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은, 완벽한 남성상에 대한 우리들의 판타지일 수도 있지만, 그 유치한 장르가 여성의 다층적인 면모들을 끌어안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괜찮은 영화도, 여성캐릭터를, 구원자, 팜므파탈 이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나.(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키'빠순이'가 못된다. 얼마전 하루키의 신작을 두고 한 블로거가 하루키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그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라고 썼는데. 난 그래서 그를 좋아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그에게 여성은 보다 구원에 가깝다. 난 그게 참, 답답하고 힘들다)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우디앨런은 여성을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 가운데 하나다. (다큐멘터리에서조차 다루지 못했지만, 나는 그가 과연 미아 패로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지고 있는지 상당히 알고 싶다. 그 다큐멘터리 감독은 실제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단지 그 힘든 이혼 과정 속에서 영화를 열심히 만들어낸 두 두뇌를 가진 남자라는 것 이외엔.) 지난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Vicky Christina Barcelona)>에서 서로 다른 인생에 대한 관점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두 여성이 등장해 서로 갈등하면서(사실은 둘 중 한명만이 끊임없이 내적으로 갈등하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끝맺었던 것과 비슷하게 이 영화에서도 두 입양자매를 통해 서로 다른 입장의 여성들의 심리를 흔들거리며 따라간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비키. 이 느끼한 남자가 맘에 들어오다니 말이 돼?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크리스티나는 내 남자의 옛 아내도 좋아하게 된다.

두 여자ㅡ 아무 스캔들 없이 무사하게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디앨런이 대단한 것은 결코 그 여성들의 심리를 아는 척하지 않으면서 그녀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들이 실수를 선택하든 그렇지 않든, 그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들을 카메라로 좇으며 그 삶을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구원자도, 누군가의 진정한 팜므파탈도 아닌, 유약하게 흔들리고, 그러나 그 흔들림이 다시 힘이 되기도 하는 그런 여성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젊은 두 여성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과 온실속 화초처럼 자란 중산층 커플들의 허위의식, 아티스트들이 가진 '똘기의 정당화'에 대해 서슴없이 웃음의 화살을 꽂았다면, <블루 재스민>은 보다 비극버전이라 할만하다. 일단 인생의 실수를 해도 가뿐하게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비키, 크리스티나과 같은 젊은 여자들과는 달리, 중년의 재스민은 일단, 새롭게 시작할 여지가 많지 않다. 그것도 자신이 있던 환경을 다시 되가져 오기란 불가능하고, 또한 땅으로 떨어진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리 주변에서 맥주를 마신다 한들, 그녀는 라임에 오렌지 트위스트가 들어간 마티니를 마셔야한다. 죽어도 샤넬 재킷에 에르메스 백을 들고 나가야 하며, 쫄딱 망한 주제에 여러가지 변명을 내세우며 퍼스트 클래스를 끊었다. 지금은  당장 힘이 들어 치과캐셔로 취직했지만, 저따위 치과의사가 치근대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만 할 뿐이고, 그녀는 앞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될 생각이기에 이제 겨우 컴퓨터를 아장아장 배우기 시작했다. 될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고작 '똥'치우는 일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어 '신의 아들'에서 자신의 '똥'을 치워야 하는 입장이 된 야코프. 그는 결국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에 스스로 뛰어들어 자살을 선택하고야 만다. 


"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그는 독일군에게 생포되었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 때문에 예전부터 그에게 철두철미한 반감을 가졌던 다른 포로들은 그를 더럽다고 비난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드라마를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 그가(그는 신의 아들이자 추락한 천사였다) 왜 이제는 고상한 것(신과 천사들)이 아니라 똥 때문에 심판받아야 했을까? 가장 고상한 드라마와 가장 일상적 사건이 이토록 현기증날 정도로 근접한 것일까?
 현기증날 정도로 근접하다? 근접성이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일까?
 그렇고 말고. 북극이 남극에 거의 닿을 정도로 근접한다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고, 인간은 현기증나는 진공 속에 놓여져 추락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저주와 특권이 더도 덜도 아닌 것 같은 것이라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에 차이점은 없이질 테고, 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심판받는다면 인간 존재는 그 부피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스탈린의 아들이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던진 것은 부피가 사라진 세계의 무한한 가벼움 때문에 한심하게 치솟은 천칭 접시 위에 자기 몸을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그리고 밀란쿤데라는 그의 죽음을 전쟁 중 있어났던 유일한 형이상학적 죽음(Metaphysical Death)라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졌던 특권과 저주를 차례로 만나게 될 때, '현기증나는 진공 속에 놓여져 추락의 유혹'에 빠진다. 재스민은 그렇게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일 수 없고, 과거의 현실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살아낼 수가 없다. 그녀의 혼잣말 정신병은 점점 심해진다.


(지금 고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참 적절치 않을 수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밀란쿤데라의 형이상학적 죽음에 대해, 그리고 돌아가신 김종학PD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드라마 현실에 대해, 혹은 나아가 요즘 한국 영화계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기사들을 보면서, 사실상 나는 한 남자의 굴곡많은 삶에 대해 그 형이상학적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때 서울의 길 위에 개미 한마리 안다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모든 사람을 TV앞에 끌어모았던 역사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던 그 남자가 인생의 씁쓸한 바닥에서 자신보다 어린 검사 앞에서 모욕적인 소리를 듣고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욕을 들어내는 것을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두가지의 서로 다른 삶이 한 점에서 만날 때 그 진공 속에서  한없이 가벼운 삶을 끝냈다....)


하지만 우디앨런의 인생에 대한 철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민의 삶을 살아온 동생 진저는 오히려 그녀 덕분에 살짝 윗 세상의 맛을 보게 되고, 그 윗 세상이 선사한 배신 속에서 자신의 자리로 가뿐하게 돌아온다. 그것도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재스민의 삶은 복구 불가능해보인다. 물론 그녀에게는 충격적인 반전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지만, 모든 중년여성들이 가지는 불안함은,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젊은 시절처럼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점, 그리고 사회의 눈에 비추어 보다 우아하게 보이고 싶다는 점. 간만에 보는 우디 앨런의 비극엔딩이다.


PS. 샌프란시스코 여행기사를 이 곳에 올리고 나서 본 영화속 샌프란시스코... 그는 참 영화 속 등장하는 동네도 잘 골랐다. 그의 영화 배경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Posted by NYCbride


작년 한국에 살 때만 해도, 외국인 기자 친구들(대부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유럽, 미국의 일간지 특파원들)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대기업들의 현실에 대해 언제나 부정적인 면을 시작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벌써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몇년 전 '장자연 사건'은 외국에서도 꽤 많이 다뤄진 사건이기도 했다. 적어도, 아시아 나라에서 일어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처럼 센세이셔널한 일로 읽혔을테니까. 그에 대해 그 프랑스 기자친구와 가끔씩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 역시 한국의 이상한 시스템과 구조 속에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는 것, 어린 친구들이 어른들의 돈놀이에 놀아나는 것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외국 언론의 가끔 객관성을 가장한 집요함은 진짜 현실을 자신들이 원하는 측면으로 과장하기도 하니까. 내가 화가났던 건, 서양인의 시각으로 동양의 기괴함을 다루려고 하는 그들의 의도 때문이었다. 어차피 한국 뉴스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그들의 잡지, 혹은 신문에는 '센세이션'함이 필수였을테니 더 그러했겠지.

여전히 소수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가지고 있는 권력은 너무나도 크고, 외국인들이 지적하듯, 천편일률적인 아이돌이 나왔다가 사라지기도 하며, 작은회사의 적은 자본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 아이돌을 양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린 소년 소녀들에 대한 '노동권'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여러가지 성장통을 겪으면서 아이돌 밴드들이 가지고 있던 내부적인 문제나 외부적인 시선은 조금씩 변화했다(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가고 있고 이를 부정할 수는 결코 없지만 말이다).  K-pop에 관심을 두지 않던 내가 여전히 2009년 최고의 노래는 그 어떤 인디 밴드의 노래가 아니라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듯이.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가 일하던 패션잡지에서는 배우들을 섭외하는것 이상으로 아이돌멤버를 섭외하기 위해 안달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한다, 처음으로 아이돌을 인터뷰하라는 지시가 편집장님으로부터 내려왔을 때, 우리 기자들끼리 얼마나 의아하게 생각했었는지. 우리가? 아이돌을?


심지어,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시스템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기도 했던 외국인 기자 친구조차 작년에는 'K-pop'에 대한 특집기사를 싣게 됐다. 소수의 취향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네가 생각하듯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언제나 소수의 취향이 다수의 취향보다 팬심이 오래가고,  때로는 비주류 문화가 '세련된' 취향으로 읽힐 가능성이 많음을 생각하면 이는 긍정적이다.

영국의 트렌드 세터인 <모노클>의 편집장은 이미 한국문화, 한국 음식, 그리고k-pop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고

지난해에는 미국의 인디 밴드를 다루는 유명한 웹매거진 <피치포크>에서조차, 언제나 독립 레이블을 위주로 했던 그들이 K-pop을 다루고 말았던 것이다.

K-pop은 적어도 색다른 취향을 갖기를 원하는 서양인들에게, 트렌드 좀 알아야 하는 힙스터들에게 그래도 알아두는 것이 좋은 장르가 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내가 꼭 즐기지 않더라도, 판타지 너드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와 책들을 꼬박꼬박 알아두듯이.

그래서 나는 소녀시대의 미국, 유럽 진출이나 싸이의 급작스런 인기가  '비주류'적인 취향을 건드렸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하곤 했다. 여기서 살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시아인이, 여기에 있는 백인, 혹은 흑인들의 문화사이를 파고들어 최고가 되는 것은, 여기서 나고 자라 최고의 기량을 뽐낸다고 해도 쉽지 않다. 그만큼 소수 인종이라는 것, 그만큼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것, 그런건 아마 할리우드 영화시장이나 이곳의 음악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어려운 문제가 된다. 예전 몇몇 한국 뮤지션들이 빌보드에 오르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잘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백인과 흑인이 쥐고 있는 이곳 문화의 주류 사회 속에서 1등을하겠다고 아등바등했기 때문이다. 꼭 빌보드만이 1등인가. 마치 뮤직뱅크에서 1위를 하면 그만인 한국사회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됐지만, 소녀시대의 경우에는, K-pop이 동남아시아를 점령하고, 일본을 장악한 후,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은 서양의 힙스터들이 '새로운 비주류 취향'으로 슬쩍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그들만의 작은 세계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녀시대는 그 작은 비주류 마니아들의 인기에 힘입어 미국으로 건너올 수 있게 됐고, 굳이 빌보드를 추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새로운 문화'로 읽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그 때 미국과 프랑스 쇼에 나온 '수영'은 너무 예뻐서 나도 깜짝 놀랐다. 동양의 밀라 쿠니스가 따로 없었다......!라는 개인적인 의견.그러나,, 소녀시대와 빌 머레이라는 이러한  기괴한 조합이라니... ㅋ)




싸이는 또 어떤가. 그 역시 캐치한 웃기는 뮤직비디오 하나로, 사람들의 비주류적 취향을 주류로 끌고 왔다. 젠틀맨이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세는 확실히 꺾여있다. 내 생각에 앞으로 싸이가 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유명한 래퍼나 가수와 함께하는 피처링 컨셉트로 가는 것이 옳지 않았나 그런 것도 생각해본다.


여하튼, 미국에서 K-pop은 주류로 읽히지는 않아도, 대중문화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서는 안되는 새로운 소재가 된 것은 사실이다.

오늘은 <The Atlantic>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미국에는 뉴키즈 온더 블록이나 백스트리트 보이즈 처럼 오래전 아이돌들이 다시 결합하여 공연도 하고 하면서 9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뉴키즈 온더 블록의 팬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를 지속하면서, 최근 있었던 그들의 공연을 직접 마련하는 저력까지 보였는데 게스트가 무려 보이즈 투 맨이었다. 중요한 것은 <The Atlantic>매거진에 나온 내용은,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한국의 K-pop밴드 신화를 본받아야 한다면서, 그렇게 여전히 자신들이 어린 아이돌인줄 알고 똑같이 90년대 짓이나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신화처럼, 자신들의 세대를 끌어안으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이 writer가 한국문화 팬인지, 아니면 영어를 엄청나게 잘해서 영어로 원고까지 쓰며 살고 있는 한국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내용이 상세하다. 심지어 한국의 SNL 을 들먹이기까지 한다.




http://www.theatlantic.com/entertainment/archive/2013/07/what-the-backstreet-boys-could-learn-from-k-pop/278036/


번역을 하면 이렇다.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K-POP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보이 밴드 신화는 그들이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어린척 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 이유는 그 나이를 함께 끌어안기 때문이다.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그들의 20번째 기념 앨범 <In a World Like This>를 다음주에 발매한다. 이것은 2009 <This is Us>가 나온 이후 첫번째 레코드이다. 멤버들은 평범한 수순의 홍보 활동을 펼쳐왔다. 컴백투어를 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아침 쇼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 그룹이 20년 가까이 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서 현재 플러그를 꽂고 팝뮤직을 듣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함께했다(늙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밴드의 유명세는 그 때 그랬던것과는 더이상 같을 수 없다. 백 스트리트의 지난 앨범 <This Is US는 미국 빌보드차트 200 9위로 데뷔했지만,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둔 두 개의 싱글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 그룹은 2011년 뉴키즈온더블록과 함께 이미 10년도 전에 변해버리고 만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를 이용하여 돈을 좀 벌었지만, 많은 새로운 팬을 노릴 수는 없었다.

백스트리트보이즈는 ‘As long as you love me’때 이후로 이미 얼마나 크게 음악시장이 변해버렸지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들이 어린 리스너들을 사로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The Wall Street Journal>인터뷰에서, 멤버 케빈 리처드슨은 얼마나 오늘날의 대중관객들이 백스트리트보이즈가 최고지점에 있을때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소셜미디어 때문에 아티스트로부터 새로운 컨텐트를 지속적으로 기대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운 팬들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작년의 보이그룹은 아마도 다시 적응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그들에게는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있다. 한국의 백스트리트보이즈에 해당하는 신화이다.

한국의 팝시장은 미국의 것에 비하여 한참 어리지만, 그 트렌드는 미국의 트렌드 : 덥스텝, 오토튠, 음악경쟁쇼, 등등을  반추하게 한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과는 달리, 한국은 아주 격렬한 그룹액트에 훨씬 많이 매달려있다. 그것은  소년들과 소녀들로 이루어진 집합체(한국에서는 아이돌 그룹이라고 부른다)의 프로덕션을 노래와 댄스 그 이상의 것을  그들이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과학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K- pop이 음악적인 스타일에서 그리고 아티스트들에 있어서(음악경쟁 쇼 덕택에) 더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기 시작하였지만 아이돌 그룹은 여전히, 특히 돈이 있는 곳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에만, 61개의 그룹과 듀오가 데뷔를 했고, 그 중 33팀이 남자였다.

그래서 K-pop은 보이 밴드에 관해서는 하나 혹은 둘을 더 잘 알고 있다. 1998년으로 되돌아가서, SM엔터테인먼트가 신화라고 불리는 그룹을 탄생시켰다. 6명 멤버인 보이밴드는 2003년 레이블을 떠나기 전까지 SM엔터테인먼트의 이름 아래 4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고, 17개의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현재까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는 남자 음악 그룹이고, 최근 함께 15번째 기념일을 기억하기 위한 11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

그룹으로서, 신화는 백스트리트 보이즈 보다 다섯살이 어리지만, 그러나 그들의 한때 자국에서 최고의 보이밴드였던 이들이 멋진 성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에 있어서는, 그들이 닉카터&Co보다 몇년은 더 성숙한 것 같다.

신화의 모든 여섯 멤버들은 지금 30대이고, 육체적으로 해야하는 것, 그러니까 의무적으로 군대에 다녀오는 것들도 모두 마친 상태이다. 그룹으로 15년을 함께 하면서 그들은 지속적으로 노래를 발표하고, 투어를 했으며, 텔레비전에 출연해왔다. 그들의 2012년 앨범 <The Return>은 작년 8만장이 팔렸고, 이것은 4년만의 공백 이후 돌아온 그룹으로, 그것도 이미 과포화된 시장에서 다른 아티스트와 경쟁하면서도 한국에서 공고한 숫자를 기록한 것이었다. 현재 일부 멤버들은 연기를 하고, 다른 사람은 음악을 만들고, 어떤 이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이 모든 멤버들은 여전히 한국대중의 귀와 마음에 남아있는 신화이다.

신화가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도, 이 그룹의 지속가능함의 필수적인 부분은 현명한 자기인식 때문이다. 최근 SNL코리아의 에피소드에서, 신화는 호스트로서 박물관에서의 밤이라는 적절한 타이틀을 붙인 촌극에서 자기자신들을 스스로 찔러 웃음을 유발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훨씬 어린 버전을 연기하였는데, 말 그대로 지난 세대에서 온 유물로 기능하며,  방문객이 조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난 시대의 보이밴드 의상을 입고 나타난 신화는 어린 박물관방문객 앞에  형상으로  서서 그들이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룹의 아이덴티티 앞에서 혼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에피소드의 ‘Digital Short’에서 신화는 보험설계사 영업직원을 연기하며 아이돌 퇴직 보험 플랜이라 불리는 상픔을 판매한다. 패키지는 은퇴한 아이돌들이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는 팬들과 생일파티를 축하하고, 적극적인 아티스트에게 기습키스를 당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은퇴한 아이돌이 여전히 젊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스토커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내용은 다소 뻔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자기 겸양과 겸손은 신화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밴드 멤버들이 10대들에게 맞추어진 노래를 그나이에  습관적인 형태로 부르는 것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 그것은 그들이 곧 진짜로 그러했었지가 될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신화로부터 배울수 있는 것은, 그래서, 보이밴드에서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방법을 던져버리고 농담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최근 홍보 전략은, 그러나, 결코 그것을 돕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아주 진지하게 오래된 슬로건(“백스트리트가 돌아왔다!”)을 여전히 연주하면서 지속적으로 그들 자신과 데이트하고 있다.

 

(이후 3단락은 현재 잠이 와서 생략)


번역을 해놓고 보니, 이 글을 쓴 사람은 거의 한국문화전문가인듯하다. 이제 이렇게 자세한 내용의 글이, 잡지의 중요 섹션을 차지하게 된 것은 분명 지금 <백 스트리트 보이즈>가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뒤의 생략된 부분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느끼하게 구는지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K-POP을 띄워주는 분위기는, 분명 여전히 한국문화를 즐기려고 하는 일부 소수 마니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어쩐지 뿌듯해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예전에 신화의 김동완 인터뷰를 했을 때, 참 현실적인 아이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스란히 그렇게 원고에 쓴다고 썼는데, 모 블로그에서 잡지 인터뷰를 퍼다 놓고 "이 기자 언니는 우리 오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해서 참 상처 받았던 기억이... ㅎㅎ난다. 너희 오빠들은 이제 더이상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살고 있는 늠름한 성인들이란다....라고 말하고 싶었었다.
:)


이러나 저러나, 신화 SNL은 어디서 보지? 이곳에서는 정말 한국 TV를 어둠의 경로로 보는 수밖에 없는데.... 저 원고를 보니 더더욱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노래 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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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을 저울질하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회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오늘만해도 심지어 월요일인데,  '쉬앤힘(She&Him)'이라는 밴드와 한국에도 방문한 적이 있던 'CSS'밴드가 공연을 한다고 해서 고민끝에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쉬앤힘' 공연으로 마음을 다잡고 티켓을 구입했다.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서머스테이지는 지금 계속 되고 있는데 때로는 무료공연이기도 하고 '쉬앤힘'처럼 유명하고 인기있는 밴드는 유료로 진행된다. 오늘만해도 쉬앤힘 오프닝 밴드로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한국에도 이미 앨범이 발매되어 인기를 모은 글라스고 밴드가 45분 가량을 공연을 하고 (아 인생무상인 것이, 고작 세 개의 앨범을 낸 쉬앤힘에 밀려 오프닝을 선 밴드가 무려, 무려, 카메라 옵스큐라라니!) 쉬앤힘 공연에 돌입했다.




'쉬앤힘'은 미국에서는 꽤나 인기가 좋은 인디 밴드다. 주이 데샤넬 (Zooey Deschanel)이라는 여배우는 우리에게는 이미 <500일의 썸머>에서 조셉고든래빗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는 휙하니 다른남자에게 시집을 가버리는 팜므파탈로 등장해서 유명해졌다. 사실 그녀는 이미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경력있는 배우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면서 사실상 컬트 배우로 등극했다.

그녀의 이미지는 한국으로 따지자면 최강희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뭔가 4차원같고, 언제나 앞머리를 내리고 귀여운 빈티지 드레스를 입는, 쿨하지만, 뭔가 독특하고, 독특하지만 귀여운, 그러니까 미국의 힙스터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미국의 힙스터 스위트하트(Sweetheart)라고 할까.

미국에서는 꽤 인기를 끌고 있는 시트콤 <뉴 걸>에서 자신의 이러한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녀는 '데스 캡 포 큐티(Death Cab for Cutie)'와 역시 미국의 인디 밴드로 인기를 끌고 있는 '포스탈 서비스(Postal Service)의 벤 기버드와 2009년 결혼했다가 최근 이혼으로 이슈가 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결혼과 이혼이 힙스터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런 독특한 매력으로 어필해왔다.

쉬앤힘은 그러한 그녀의 이미지답게, 복고적인 포크와 모던록이 결합된 음악을 주로 하고 있다. 

최근 신작 앨범 때문에 투어를 돌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앨범이 나오기 전이라고 들었다.



<쉬 앤 힘>의 히트곡 중 하나인 'In the Sun'




주이 데샤넬이 그녀와 함께 <500일의 썸머>를 촬영한 조셉 고든 래빗과 아마도 영화 촬영 이후 재미로 만든 뮤직비디오 이자, 그녀의 첫 앨범 첫 히트곡이었던 'Why do you let me stay here?'


이렇게 취향 훌륭하시고, 얼굴도 예쁘시고, 하는 짓 마저 귀엽기 그지없으니, 남자 팬들이 흥분하는 것도 대략 이해. 게다가 최강희 씨가 그렇듯 여자 팬들도 잔뜩. 저 경쾌 발랄한 노래를 들으며 흥분해서 뛰는 남자들을 페스티벌에서 발견했을때, 묘한 느낌이 들었다. 누나 팬들의 힘? 물론 대부분 여자친구와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남자들끼리 오는 경우도 꽤 되던데, 그들의 머릿 속을 분석해보고 싶다.


여튼, 오늘은 그녀가 메인 보컬로 있는 밴드 '쉬앤힘'의 공연을 보러갔다.

생각보다 그녀의 목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장기간 투어이니 이해하기로...)몇 곡을 제외하고는 썩 잘 불러주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아티스트의 요청으로 사진 및 심지어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든 것이 금지라나. 룰을 따르지 않으면 내쫓겠다고 엄포를 놓는 진행요원들 때문에 나도 무서워서 남편에게 투덜투덜.(여기는 경찰과 세큐리티 아저씨들이 가장 세다!). "너네 나라 왜이러니! "

모르겠다, '그녀와 그'의 생각이 뭐였는지 몰라도, 그런 것들이 야외 콘서트의 별미인데. 공연장 안처럼 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풀냄새도 맡고 파이어 플라이(불꽃처럼 날아오르는 벌레)도 보고, 비도 맞고(한차례 폭우가 쏟아졌다가 금새 그쳤다), 맥주도 마시면서(8달러나 하는 맥주 한 잔에 컥!) 하는 건데. 그게 재미인 건데. 자 여러분 내가 공연하니 여기 집중 좀! 하는 분위기처럼... 좀 아쉬웠달까. 그래서 사진 한 장 못건졌다.

한국사람들은 (야외 페스티벌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따위 룰 뭐냐며 찍고 난리인데, 미국 사람들은 아무리 아웃도어 페스티벌이라도 꼭 지켜드린다. 그게 좋은 것도 있지만, 때로는 안그럴 것 같으면서도 룰을 지키는 미국인들의 습관이 신기하다. 그런데 길 위에는 왜이리 쓰레기가 많은건가! (마지막 앵콜 곡에 이르러서야 '쫓겨나도 괜찮아' 하며 찍기 시작한 사람들은 좀 보였다)
아쉽지만. 자랑사진을 위해 공연 전 한 컷 멀리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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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뉴욕에서 집을 구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정말 그렇다. 

뉴욕에서 방을 빌려서 살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미국 신용등급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나는 한국인이고, 여기에서 일단 마이너스.

몇년동안 제대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증명이 필요하다. 미국의 택스 리펀 증명서 몇년 분이 필요하다.

나는 한국에서 돈을 벌었고 이역시 마이너스.

남편에게 툴툴댔다.

뭐 이런 나라가 다있냐. 돈 없어서 집 못사고 월세를 사는데도, 내 신용평가를 내어주어야 하고, 내가 얼마를 버는지 월급도 노출해야해? 이건 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내 성적표 갖다주는 심정보다도 나쁘잖아!

'한국에서는 말야...'에 이르렀을 때 나는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입을 닫았다. 가장 나쁜 불평. 그러려면 미국에 왜 왔니.


여하튼 남편 역시도,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의 시민이지만 몇년동안 외국에서 학생으로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역시도 택스리펀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의 직장이 없다는 건 가장 큰 단점. 그리고 만약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증명을 하지 못하면 또 차인다.
맨하탄 일부 지역의 고급 빌라에서는 교수, 의사, 변호사가 아니면 입주할 수 없는 타운도 있다고 하니, '아 정말 이 망할놈의 자본주의라니!'라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예전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아만다가 입주민 모임에 나가서 입주민 인터뷰를 보는 장면이 있지 않나(거기서 흑인 농구 코치와 또 한 번 연애에 빠진다). 뭐 그런식인가보다.


브루클린의 파크슬로프 아파트에서 집주인에게 제대로 한 번 차인 후(심지어 나는 한국 택스 리펀 몇년치와 은행계좌까지 첨부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정말 상심하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알게됐지만, 한국 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년치 월세를 한번에 납부하고 산다고 한다.  남편은 이것이 불법이라며 그럴바에는 홈리스로 살겠다고 펄쩍 뛰었지만 며칠 후 우리는 결국 이 억울한 돈의 논리에 굴복할 뻔 했다. "그냥 1년치든 6개월치든 먼저 준다고 하면 우리를 받아주지 않을까?" 이미 브루클린의 괜찮다는 동네들, 파크 슬로프, 클린턴 힐, 포트 그린 등을 돌면서 '솥뚜껑보고 놀란가슴 자라보고 놀란다' 가슴이 된 우리들의 비겁한 마음이었다.


며칠 후 우리는 퀸즈의 옛옛 힙스터 동네(브루클린에 완벽하게 밀려났지만)라고 알려진 아스토리아 지역의 좋은 주인을 만나 계약을 했다(남편이 신용등급이 좋았던게 아주 다행이었다). 6월 1일 입주라 아직도 떠돌이 신세긴 하지만, 그리고 여전히 브루클린을 그리워하고 있기는 하지만, 뒷뜰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뉴욕시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 조건이 우리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어느새 뉴욕에서 우리는 방 2개 아파트가 2000불 이하라고 하면 '진짜 싸구나'라는 말을 연발하게 됐다. 이 망할놈의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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