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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2 미국 (반)횡단 열차 여행

미국 뉴욕에 집을 구한지 며칠 안되던 시점이야기다.

집 주인의 동의를 구해 방역업체를 부르고 잠시 시부모님댁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한국에서 배로 보낸 몇 박스(대략 14박스)의 짐이 시부모님 댁으로 도착했기 때문에 그 짐을 뉴욕까지 운반해야할 필요가 있었다(한국에서 미국까지 배로 부치면 2달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1달만에 도착을 했고, 당시에는 뉴욕의 집을 구한 상태가 아니라서 우리짐을 모두 시부모님이 계신 위스콘신으로 부친 상태였다).


문제는 내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위스콘신으로 간 것이다. 중형 밴에는 남편과 시아버님 두 명밖에 탈 수가 없어서, 나 혼자 비행기를 타고 와야하는 상황. 예전엔 혼자 여행하는게 그렇게 좋았는데, 결혼하고 나니, 왜 혼자다니는게 그리도 싫은지. 게다가, 남편이랑 함께 있으면, 힘들게 발음 굴려가며 영어 안해도 되잖아. 그리고 너네나라 저가항공은 지연도 너무 많고, 제대로 잘 알려주지도 않잖아.

하지만, 기차 여행이라면 좀 다르다. 대학교 때 유럽배낭여행하던 그 기분이 다시 모락모락 올라올 것 같았다. 쿠솃타고 파리에서 로마까지 다녔던 몸이라구! 남편, 내가 에단호크 같은 남자랑 만나 중간에 내려서 뉴욕으로 늦게 돌아올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위스콘신의 밀워키에서부터-시카고, 시카고-뉴욕에 이르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총 24시간 이상이 걸리는, 특히 시카고에서부터 뉴욕의 경우 시카고 밤기차를 타고 뉴욕 저녁에 떨어지는... 그런 횡단열차를 타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중부에서 동부로.


이 어찌나 멋진 계획인가!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 미국에서 기차타고 여행했다는 사람은 하나도 못봤다. 나 역시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샌프란시스코로, 샌프란시스코-나파/소노마-오레건-포틀랜드는 자동차로 여행했기 때문에 기차 여행은 어쩐지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위스콘신에서 아버님이 해주시는 맛있는 바베큐를 먹고,




어제 묘사했던 것처럼 남편의 머리를 이렇게  망쳐 잘라 놓고  (기념하여 밀워키 역에서 사진 한 컷).


그리고  나는 홀로 밀워키에서 시카고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남편 안녕. 내일 모레 만나







오후 5시 45분에 출발, 그 다음날 저녁 6시 35분 도착. 그러니까 장장 25시간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에는 유럽과, 일본, 우리나라에 있는 고속열차가 없다. 도시인구가 집약적으로 모여있지 않고(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흩어지는 방식으로 도시가 형성된 미국의 경우에는 기차보다는 비행기가 훨씬 더 편리하게 이용된다. 이미 수많은 저가항공이 운항되고 있는 미국에서 고속열차를 운영하면서 생길 마이너스 요소를 감수하기 싫어하는 것도 있고.(미국은 무조건 민영화를 외칠 것이다)-아무리 그래도 나는 시카고에서 뉴욕까지의 고속철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투덜댔다. (저가항공의 경우 출발시간이 지연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다. 이미 우린 뉴욕공항에서 시카고를 가는 비행기를 3시간 반이나 넘게 기다려 탔다. 우리집에 놀러온 시카고에 살고 있는 친구는, 지연되던 비행기가 자정이 다 되어 결국 캔슬되고, 그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기도 했다...! 기차라면,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까?!)


여하튼, 나는 고속철이 아닌, 25시간짜리 기차를 탔다.


시카고에 도착하여 혼자 저녁을 챙겨 먹고,

다시 시카고 유니온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시카고 유니온 스테이션, 모두 한밤 기차에서 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서, 줄을 일찍 서지 않았으면 좋은 자리에 앉지 못했을 것 같다. 티켓에 자리가 씌여있는 것도 아니라서, 줄을 서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 기차의 객실담당하는 담당스태프 언니가 자리좌석번호를 나누어준다.


물론, 나는 기차 안에서 잘생긴 에단호크를 만나지는 못했고,

대신 한밤에 술에 취했는지 뭐에 취했는지, 기타를 두드려대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한 남자와 같은 칸에 타서 잠을 다 설쳤고,



심령사진처럼 나온 나의 사진. 한밤엔 어두워요.



생각보다 외경은 그리 예쁘지도 않았으며






들고간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나에게 짐덩이가 되었고,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도록 되었지만, 내 컴퓨터에는 영화가 없어서, 옆에 앉은 언니 아이패드로 나오는 드라마를 몰래 훔쳐봤고,

몇칸을 지나가면 카페 칸이 나와서 가봤는데, 그저 그런 샌드위치와 맛이 없는 커피를 팔았지만, 나는 네 번이나 커피를 마셨다.



시어머니가 싸주신 비스켓과 쿠키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듯.


그리고 한낮이 되어서야 그 기타치던 배짱이 아저씨는 잠이 들었다. 가끔 이해가 안되는건, 한국사람들은 벌써 조용하라고 소리쳤을텐데, 미국인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뭐라고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저녁이 다 되어 나는 펜스테이션에 도착.


전, 다시는 밤 열차를 타지 않겠어요. 물론 비행기 값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그리고 미국에서 열차를 타봤다고 자랑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음, 하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글쎄, 나는 다음에는 영화 다섯편쯤 컴퓨터에 저장하겠다. 그리고 내 뒤에 앉아 밤새도록 떠든 커플에게도 한 소리를 하고, 저 앞에서 기타를 치는 취한 남자에게도 따끔히 한마디 해야지. 

그리고 다.시.는. 미국에서는, 혼자 열차를 타는 일은 피해야지.










Posted by NYCbr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