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8.14 힙스터가 도대체 뭔데? (8)
  2. 2013.07.28 우디 앨런 신작 <블루 재스민> Review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최근들어 사람들이 '힙스터'라는 단어를 즐겨 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첫 '힙스터'라는 단어는  모 그룹의 앨범 홍보보도자료에서였는데, 고급스러운 강남 클럽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세련된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강남 힙스터들을 열광시킬 음악'이라는 문구가 (나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힙스터'라는 단어를, 무언가 세련된 놀이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청담동 카페에 천편일률적인 루이 비통 가방을 들고 청담동 며느리처럼 웨이브 머리를 하고 단아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크네(Acne) 옷이나 최근 화제가 되는 편집 매장의 의상을 골라입고, 혼자 살고 있는 집에는 적어도 소파나 스툴 정도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가구점에서 구입할 줄 아는, 가로수길의 패셔니스타....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힙스터'라는 단어의 의미는 보다 서브컬처와 맞닿아 있다. 인디 영화를 즐겨보고, 인디 뮤직을 즐겨 들으며, 업스케일의 클럽보다는 문화적이고 아티스틱한 분위기의 바와 클럽에 모이며, 하이엔드 고가 명품(이라고 한국에서 생각하는) 디자인보다는, 자유로운 철학을 가지고 서브컬처 예술을 이해하는 디자이너들을 지지하는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고 스스로 트렌드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패셔니스타라기보다 너드(nerd), 긱(geek)에 가까운 그들의 삶의 스타일은 처음에는 '힙스터'라고 불리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보헤미안'으로 불리기도 했다. 21세기가 되면서 미국에서 '너드'들의 삶은 보다 '쿨(Cool)'한 삶으로 각광받게 된다. 무언가 집착하는 취향 하나 정도는 제대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만든 힙스터게임

당신은 힙스터인가? 게임

1. 나는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을 좋아한다.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지금 현재 미쳐있다. 나는 판타지 너드다.  yes or no

2. 미드 중에서도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미드를 좋아한다. yes or no

3. 나는 가끔 미국 피치포크 웹사이트에 들어가 미국의 인디 뮤직 트렌드를 확인한다. 남들보다 먼저 인디 록밴드를 알고 얘기하지 않으면 못견딘다. yes or no

4. 나는 베지테리언이다. 혹은 베지테리언이 될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yes or no

5. 환경친화적인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다. yes or no

6. 강남의 멋진 클럽보다 해방촌이나 경리단 길에 놀러가는게 더 좋다. yes or no

7. 집에서도 나는 핸드 드립 커피를 직접 해마신다. 스타벅스 커피는 맛이 없어서 직접 커피를 볶는 로스터 가게로 향한다. yes or no

8. 내가 즐겨 찾는 빈티지 스토어가 하나 이상 있다. yes or no

9. 남자의 수염을 인정할 수 있다.  yes or no

10. 한 때 인디 밴드를 만들거나 단편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yes or no


위의 답에서 5개 이상 예스라면 당신은 힙스터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같은 판타지 문학에 제대로 취한 판타지 너드 이거나(미국에서 <왕좌의 게임>에 대한 20-30대들의 열광은 한국에서 <설국열차>를 기다리는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 피치포크(미국의 인디음악 웹 매거진)를 애독하고 새로 나온 작은 밴드들까지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음악열광마니아이거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톨스토이보다 못한지에 대해 미친듯이 떠들거나 헤밍웨이와 스콧피츠제럴드 중에 하나에는 편을 들 줄 아는 문학적인 심미안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기타든, 드럼이든, 혹은 외국의 독특한 악기든 연주할 줄 알고,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아가 아마추어 밴드를 만들어볼까 논의를 하거나 자신의 사진, 글, 그림 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준아티스트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통 여기에 속한다.  


사실 미국에서 '힙스터'라는 단어는 그리 긍정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힙'이라는 단어가 너무 트렌디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미국의 힙스터들은 자신들이 트렌드를 따라가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트렌드마저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그들이기에, '너 힙스터구나~!'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기분 나빠할 것이다. 차라리, '너 '너드'구나!' 말하는 것이 칭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몇년전부터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TV프로그램 <Portlandia>는 '힙스터'들의 지적 허영이나 스타일 허영에 대해 꼬집어 코믹하게 만들고 있다.


일단 포틀랜드라는 지역적인 분위기를 설명하자면...오레건에 위치하고 있는 이 도시는 일단미국 서부라는 아름다운 지리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고, 정치적으로 보다 진보적이며(미국의 서부는 마리화나를 덜 엄격하게 취급하고 있다-캘리포니아의 경우 피우는 사람들을 경범죄로 거의 취급하지 않을 정도, 아마도 60년대의 히피들이 가지고 온 분위기가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다) 세금 부과율이 낮기(세일즈 택스가 없다) 때문에 미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포틀랜드에 가보면 20-30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음악문화('모디스트 마우스'와 같은 유명 밴드는 공원에서 합주를 할 정도이다, 나는 '페이브먼트'의 보컬이었던 스티븐 말커머스와 같은 클럽에서 공연을 봤다! 진짜다)가 잘 형성되어 있으며, 각종 독립영화들을 상영하고 독립잡지들을 소개하는 공간들이 많다(구스 반 산트가 이곳 출신이다. 말 다했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베이지역보다 훨씬 물가가 낮고 살기 평화로운 이 곳으로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추세이고, 그들은 환경친화적인 요즘 트렌드를 합리적으로 구사하려고 한다. 포틀랜디아는 이런 요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코믹하게 만드는, 어찌보면 한국의 트렌드보다는 조금 더 앞서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 로컬음식에 집착하는 이야기, 너보다 내가 먼저 본  책에 집착하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홍대 앞의 서브컬처 문화집단의 허영심을 재밌게 꼬집는 그런 내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포틀랜디아>에 나왔던 유명한 에피소드인데, 치킨 요리를 먹으면서 이것이 로컬음식인지, 어떤 오가닉인지, 얼마나 넓은 농원에서 자랐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웨이트리스는 닭의 이름이 적힌 사진까지 가져와서 보여주는 어이없는 코미디. 미국 힙스터들이 지나치게 '오가닉'에 매달려서 까다롭게 구는 장면을 꼬집은 것이다.


이것은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DJ를 한다고 나서는 결국 DJ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너도 나도 아티스트이고, 나도 뮤지션이고 너도 뮤지션인 그런 힙스터들을 꼬집는다. 동네 홈리스마저 디제잉을 하고 있는 그런 동네에서 겨우 벗어나 집에 돌아왔지만,..... 어머니가 히트다.

솔직히 내가 몇년은 해방촌에서 살면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이 모두 이런 스타일. 다들 뮤지션이고, 음악인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90년대 스타일이 이들의 진정한 트렌드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진정한 포틀랜드 스타일, 힙스터의 삶의 방식을 정의한다.

"대부분 야망이 없었어. 뭐가됐든 직업이 없고 일을 해봤자 주중에 몇시간 커피숍에서 알바하는 그런거? 그런 90년대의 꿈이 포틀랜드에 아직도 살아 있어. 포틀랜드는 젊은이들이 은퇴해서 가는 그런 동네야!"

그리고 안경낀 여자들이 '핫'한 스타일이라고 외친다.




윗 비디오가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자 <포틀랜디아>의 새로운 시즌은 이것을 스스로 패러디한 1890년대 스타일을 실현하는 포틀랜드이야기를 다루는 

1890년대 꿈을 이야기하는 아래 비디오가 나온다.



90년대에 다들 피클을 만들고, 직접 맥주를 만들어내던 시절을 기억해? ...

너 지금 1990년대 말하는거야?

아니 나는 1890년대를 말하는거야.


너 지금 스타일 너무 1920년대야. 이걸 써봐.



여튼 포틀랜디아는 이렇게 힙스터들의 삶을 재미있게 다루면서 오히려 더 많은 힙스터들을 양산해냈는데.


자, 우리 시아주버님이 운좋게 '포틀랜드'에 사신 관계로 나는 이 곳을 놀러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우리 시아주버님의 사진을 살짝 올려보자면....




우리 시아주버님이 포틀랜드의 힙스터들의 스타일을 대변한다. 그는 그래픽디자이너인데, 강아지를 키우면서, 환경친화적인 음식을 먹으며, 아침마다 포어오버(핸드드립)커피를 마시고,....

무엇보다 패션 스타일을 주목하시라.

저런 덥수룩한 수염은 대부분 남자들의 스타일이고, 90년대 그런지 스타일로 의상을 입으시고, 안경이 스타일을 완성하는.....!



포틀랜드 스타일을 완성시켜주는 포틀랜드의 빈티지 스토어.

이런 선글라스! 스케이트 보드를 재활용해 만든 선글라스.


<포틀랜디아>는 책으로도 판매되고 있다!


<포틀랜디아> 새로운 시즌을 홍보하는 카페 커피 슬리브.



미국의 3대 힙스터 도시로, 뉴욕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그리고 시카고의 위커파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미션구역(예전에는 헤이트 애쉬버리)를 보통 꼽는다. 새로운 트렌드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빈티지 스토어와 신인 디자이너, 그리고 음반가게가 많은 이 동네들은 아래와 같다. 




뉴욕 윌리엄스 버그 근처에 세워진 수많은 자전거들. 윌리엄스버그 힙스터들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빈티지 스토어.




샌프란시스코 미션구역.



미션구역에 위치한 Thrift스토어. 이런 비영리기업이 많다.



샌프란시스코 유명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는 1890년대 스타일의 힙스터?!





시카고의 위커파크 끝에 위치하고 있는 레클리스 레코드 안의 전경


시카고 위커파크도 점점 크기를 넓혀서 이 곳은 조금 업스케일 느낌의 길이 된 동네다. 벅타운이라고도 불리운다.



시카고의 빈티지 가게.

시카고의 링컨파크 근처의 빈티지 스토어



지금, 미국에서는 이러한 힙스터의 삶 역시 트렌디하다고 웃으며 코미디를 만들 정도인데, 어떤 의미에서 나는 한국에서도 힙스터가 트렌디함의 중심, 메인스트림의 중심에 섰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재활용이 중요하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는 안되고, 개개인이 모두 아티스트이며, 비싼 자동차를 굴리는 대신 예전 고물 자동차를 되찾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쿨'한 트렌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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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 있는 것이 이럴 때는 참 갑갑한 것이구나 싶다. 모두들 그렇게도 기다리던 <설국열차>인데, 나는 개봉날짜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이 곳땅에서 각종 트레일러와 설국열차를 위한 특별준비영상들만 보고 있다. 이제부터는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리뷰와 뉴스들만 읽고, 김빠진 콜라 마시듯 <설국열차>를 보게되지 싶다. 


여하튼 그런 안타까움을 위로할만한 뉴스가 있었으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인 우디앨런의 <블루재스민>이 이곳에서 개봉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이라니.





생각해보면, 우디앨런의 영화가 모두 항상 다 재밌었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지난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비하면 다소 밋밋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소위 예술가들의 '과거에 대한 판타지'에  '유럽에 대한 판타지'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풍자해냈다면 <로마 위드 러브>는 그러한 재기발랄함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아, 그냥 우디앨런 'so so' 영화'라는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우디앨런이 대단한 점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꽤 괜찮은 영화를 만들 때가 아니라, 아쉬운 영화를 만들 때 오히려 그의 대단함이 느껴진다. 그는 '아쉬움'을 주기는 해도 '실망'을 주는 감독이 아니다.

우디앨런은 여전히 정력이 넘치도록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은 혜안과 위트를 가미하고 있으며, 슬럼프같은 것은 모르는 것처럼 '우디앨런'이라고 하면 생각할 수 있는 '기본'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로마 위드 러브>는 '기본은 했던 우디앨런'의 영화인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로마 위드 러브> 어땠어? 하면 '글쎄, 그냥 뭐 괜찮은 정도?'라고 대꾸할지언정 '아우, 영 아니었어' 하고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 번 보고 넘어가야 할 영화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런 아쉬움을 주는 영화를 개봉하고 나도, 그 다음 영화는 또 꽤 괜찮더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한 번 하향곡선을 그리고 나면 한동안 거기에서 거기인 철학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도, 우디앨런의 영화는 그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쉽게 그 다음 영화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우리를 웃긴다.



 <미드나잇 인 파리> 센 강 다리 아래서 연기지도 중이신 우디앨런 감독


     <미드나잇 인 파리> 사르코지의 아내인 카를라 부르니가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 그에게 20세기 초기 작가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면 그녀에게는 벨에포크 시대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우리는 현재보다는 과거의 것이 언제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혹은 현재시대의 아티스트를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누군가가 죽어야만 그를 추억하는... 동시대인에 대한 질투심이 있는지도.

 


<미드나잇 인 파리> 질다 피츠제럴드와 스코트 피츠제럴드. 그녀는 <설국열차>에도 나오더라.


<내 아내의 남자도 좋아>에서 조연으로 나왔지만 주연보다 강렬한 연기를 남겼던 페넬로페 크루즈가 <로마 위드 러브>에서는 몸을 파는 여자로 등장한다.


<로마 위드 러브> 둘의 조합이 은근히 어울리기도.


<로마 위드 러브> 우디앨런 역시 스스로 등장하셨다.




이번에 뉴욕에서 개봉한 <블루 재스민>은 우디앨런이 다시 자신의 고향 '뉴욕'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거기에 공동주연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캐스팅했다.

우디앨런의 영화세계에 있어 '뉴욕' 특히 '맨해튼'이 가진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최근 몇년 간 그는 조금씩 여행을 해왔다. 바르셀로나, 파리, 로마 등 유럽의 도시들을 보여주면서 그 도시가 가진 문화와 그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진 특성을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우디 앨런은 자신이 이야기해온 중산층, 혹은 예술가 집단의 허위의식과 삶의 태도를 풍자하는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 색다른 백그라운드를 이용해 자신의 영화를 'refresh'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 뉴욕의 깐깐하고 시니컬한 사람들의 분위기와 보다 릴랙스한 태도를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를 비교하고 거기에  미국 상류층과 미국의 서민층을 대비시킨다. 한나라에 사는 같은 가족이지만, 결코 피는 섞일 수 없는 그런 계층을.

<블루 재스민>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샤넬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을 걷는 그녀. 그녀의 삶은 순식간에 뉴욕 파크 애비뉴에서 차이나타운에 어울리는 여성이 되어버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녀는 과연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을까?

동생 진저마저 언니의 영향을 받아 조금 나은 남자를 찾아볼까 생각하게 된다. 이 남자 혹시 아시는지? 미국 시트콤 <루이>에 나오는 바로 그 루이.

알렉볼드윈이 지난 영화 <로마 위드 러브>에 이어 이번에도 우디앨런 영화에 등장.


부유한 남편을 만나 뉴욕 파크 애비뉴에 살며 인생이 한없이 고급스럽게 흘러갈줄만 알았던 재스민, 그녀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여동생 진저를 찾아온다. 집도 남편도, 돈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롭게 자신의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부유한 가정주부 역할이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두 자매는 입양이 된, 실질적으로는 피가 섞이지 않은 자매. 우아하고 아름다운 언니와 달리, 서민적이고 히피같은 성격의 여동생 진저는 일찌감치 언니만 편애하던 집을 뛰쳐나왔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남편과 사이에서 나은 아이 둘과 살면서 슈퍼마켓에서 일을 하고, 블루칼라인 남자친구와 앞으로 살림을 합칠 것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신경쇠약에 걸려 동생 진저를 찾아온 재스민은 여전히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 사사건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동생이 사귀는 남자마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툴툴댄다. 툭하면 스스로 혼자 중얼중얼 말하는 버릇까지 생긴 그녀, 그녀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마저 아슬아슬하게 만드는데. 도대체 뉴욕에서 재스민에게는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우디앨런에 대한 다큐멘터리 <우디 앨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서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한다. 여성들에 대한 심리, 여성들이 가진 힘, 여성들이 가진 섬세함에 대해 상당한 놀라움과 관심을 갖게 되었노라고. 실제로 우디앨런의 영화를 보면 여타 남성 감독들이 갖지 못한 여성 캐릭터의 다층적인 모습에 상당히 놀라게 된다.

여자들이 유치찬란한(하다고 남자들이 말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은, 완벽한 남성상에 대한 우리들의 판타지일 수도 있지만, 그 유치한 장르가 여성의 다층적인 면모들을 끌어안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괜찮은 영화도, 여성캐릭터를, 구원자, 팜므파탈 이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나.(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키'빠순이'가 못된다. 얼마전 하루키의 신작을 두고 한 블로거가 하루키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그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라고 썼는데. 난 그래서 그를 좋아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그에게 여성은 보다 구원에 가깝다. 난 그게 참, 답답하고 힘들다)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우디앨런은 여성을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 가운데 하나다. (다큐멘터리에서조차 다루지 못했지만, 나는 그가 과연 미아 패로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지고 있는지 상당히 알고 싶다. 그 다큐멘터리 감독은 실제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단지 그 힘든 이혼 과정 속에서 영화를 열심히 만들어낸 두 두뇌를 가진 남자라는 것 이외엔.) 지난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Vicky Christina Barcelona)>에서 서로 다른 인생에 대한 관점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두 여성이 등장해 서로 갈등하면서(사실은 둘 중 한명만이 끊임없이 내적으로 갈등하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끝맺었던 것과 비슷하게 이 영화에서도 두 입양자매를 통해 서로 다른 입장의 여성들의 심리를 흔들거리며 따라간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비키. 이 느끼한 남자가 맘에 들어오다니 말이 돼?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크리스티나는 내 남자의 옛 아내도 좋아하게 된다.

두 여자ㅡ 아무 스캔들 없이 무사하게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디앨런이 대단한 것은 결코 그 여성들의 심리를 아는 척하지 않으면서 그녀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들이 실수를 선택하든 그렇지 않든, 그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들을 카메라로 좇으며 그 삶을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구원자도, 누군가의 진정한 팜므파탈도 아닌, 유약하게 흔들리고, 그러나 그 흔들림이 다시 힘이 되기도 하는 그런 여성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젊은 두 여성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과 온실속 화초처럼 자란 중산층 커플들의 허위의식, 아티스트들이 가진 '똘기의 정당화'에 대해 서슴없이 웃음의 화살을 꽂았다면, <블루 재스민>은 보다 비극버전이라 할만하다. 일단 인생의 실수를 해도 가뿐하게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비키, 크리스티나과 같은 젊은 여자들과는 달리, 중년의 재스민은 일단, 새롭게 시작할 여지가 많지 않다. 그것도 자신이 있던 환경을 다시 되가져 오기란 불가능하고, 또한 땅으로 떨어진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리 주변에서 맥주를 마신다 한들, 그녀는 라임에 오렌지 트위스트가 들어간 마티니를 마셔야한다. 죽어도 샤넬 재킷에 에르메스 백을 들고 나가야 하며, 쫄딱 망한 주제에 여러가지 변명을 내세우며 퍼스트 클래스를 끊었다. 지금은  당장 힘이 들어 치과캐셔로 취직했지만, 저따위 치과의사가 치근대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만 할 뿐이고, 그녀는 앞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될 생각이기에 이제 겨우 컴퓨터를 아장아장 배우기 시작했다. 될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고작 '똥'치우는 일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어 '신의 아들'에서 자신의 '똥'을 치워야 하는 입장이 된 야코프. 그는 결국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에 스스로 뛰어들어 자살을 선택하고야 만다. 


"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그는 독일군에게 생포되었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 때문에 예전부터 그에게 철두철미한 반감을 가졌던 다른 포로들은 그를 더럽다고 비난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드라마를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 그가(그는 신의 아들이자 추락한 천사였다) 왜 이제는 고상한 것(신과 천사들)이 아니라 똥 때문에 심판받아야 했을까? 가장 고상한 드라마와 가장 일상적 사건이 이토록 현기증날 정도로 근접한 것일까?
 현기증날 정도로 근접하다? 근접성이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일까?
 그렇고 말고. 북극이 남극에 거의 닿을 정도로 근접한다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고, 인간은 현기증나는 진공 속에 놓여져 추락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저주와 특권이 더도 덜도 아닌 것 같은 것이라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에 차이점은 없이질 테고, 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심판받는다면 인간 존재는 그 부피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스탈린의 아들이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던진 것은 부피가 사라진 세계의 무한한 가벼움 때문에 한심하게 치솟은 천칭 접시 위에 자기 몸을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그리고 밀란쿤데라는 그의 죽음을 전쟁 중 있어났던 유일한 형이상학적 죽음(Metaphysical Death)라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졌던 특권과 저주를 차례로 만나게 될 때, '현기증나는 진공 속에 놓여져 추락의 유혹'에 빠진다. 재스민은 그렇게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일 수 없고, 과거의 현실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살아낼 수가 없다. 그녀의 혼잣말 정신병은 점점 심해진다.


(지금 고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참 적절치 않을 수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밀란쿤데라의 형이상학적 죽음에 대해, 그리고 돌아가신 김종학PD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드라마 현실에 대해, 혹은 나아가 요즘 한국 영화계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기사들을 보면서, 사실상 나는 한 남자의 굴곡많은 삶에 대해 그 형이상학적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때 서울의 길 위에 개미 한마리 안다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모든 사람을 TV앞에 끌어모았던 역사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던 그 남자가 인생의 씁쓸한 바닥에서 자신보다 어린 검사 앞에서 모욕적인 소리를 듣고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욕을 들어내는 것을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두가지의 서로 다른 삶이 한 점에서 만날 때 그 진공 속에서  한없이 가벼운 삶을 끝냈다....)


하지만 우디앨런의 인생에 대한 철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민의 삶을 살아온 동생 진저는 오히려 그녀 덕분에 살짝 윗 세상의 맛을 보게 되고, 그 윗 세상이 선사한 배신 속에서 자신의 자리로 가뿐하게 돌아온다. 그것도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재스민의 삶은 복구 불가능해보인다. 물론 그녀에게는 충격적인 반전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지만, 모든 중년여성들이 가지는 불안함은,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젊은 시절처럼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점, 그리고 사회의 눈에 비추어 보다 우아하게 보이고 싶다는 점. 간만에 보는 우디 앨런의 비극엔딩이다.


PS. 샌프란시스코 여행기사를 이 곳에 올리고 나서 본 영화속 샌프란시스코... 그는 참 영화 속 등장하는 동네도 잘 골랐다. 그의 영화 배경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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