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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3 (연애컬럼) 언니의 충고 (26)

8월호 <얼루어> 10주년기념호 컬럼


<10년전이었다면 당신은...?>이라는 주제로 원고청탁이 들어왔다. 남편이 종종 나에게 말한다. 나는 과거지향적이라기보다 미래지향적이라고. 칭찬이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과거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있어도 과거에 가졌던 감정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 못된다. 그래서 아마도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가는 대신, 잘못을 곧잘 되풀이하는지도.
내가 무슨 충고를 할만한 입장이 되냐면서도, 원고료라는 달콤함과 담당 에디터와의 친분에 넘어가 꼰대짓 좀 해봤다. 어쨌든 결론은 뭐가 됐든, 내 말은 듣지 말라는 것이다.


<언니의 충고>

당신은 생각만큼 늙지 않았다.

언제가 성인이었을까? 당신이 이제 법적으로 알콜을 마셔도 된다고 나라에서 선언해주었던 스무살, 아니면 끔찍한 입시지옥에서 벗어났던 고3 졸업식, 그도 아니라면 약육강식의 사회에 발을 내딛었던 입사 첫 날?

솔직히 서른 일곱이 된 지금에도 그 ‘Adult’라는 단어의 정의를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실수투성이고, 좌절의 늪에서 헤엄치기도 하고, 초등학교 학생처럼 날뛰며 좋아하기도 하고, 며칠동안 청소 한 번 안하고 발가락으로 리모컨 TV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넌 도대체 지금 몇 살이니?

‘10년 전이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뜬금없이 성인에 대한 정의를 몰고 들어온 건, 스물 일곱의 (그 때는 몰랐지만) 꽃다운 나이에 내가 지나치게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지나치게 골몰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기대하는 성인으로서의 룰에 나를 끼워맞추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나를 지나치게 혹사시켰던 것이다. 오로지 대학입학만을 목적으로 달렸던 10대를 보낸 우리들은 만 20세가 되어서야 겨우 자유라는 것이 뭔지 알았다. 그제서야 라는 사람의 정체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뭔지 배우기 시작한 내가 스물 일곱이라는 나이에 마치 세상을 다 아는 사람처럼 흉내내봤자 소용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사회에 나섰을 때, 선배나 상사에게 꾸지람이라도 들으면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인간인가’ ‘내가 꿈꿨던 커리어우먼은 이게 아니었어하며 세상 끝난 것처럼 좌절하거나 세상을 욕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던 것 같다.

만약 지금 그 나이를 보내는 (당신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꽃다운 청춘들이 있다면, 당신이 아직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충분히 늙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깨져도 된다. 욕 좀 먹어도 된다. 실수 충분히 해도 된다.  서른 일곱이 되고 보니, 나는 그 때 이제 막 사회에 입문한 새내기라는 사실을 몰랐다. 사회에 발을 내디뎠으니 완벽한 드라마 커리어우먼처럼 잘할 줄만 알았다. 좌절할 시간에 까짓거하면서 조금 더 즐겼으면 좋았을 걸, 나를 알아보지 못한 세상 탓 할 시간에 다음에 잘하지 뭐조금 더 경쾌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면 보다 생산적인 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너무 어린 나이에 남들의 기대에 맞게 내 인생을 결정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다면 보다 많은 것을 경험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30대가 오고 40대가 온다. 그저 착실하게 맡은 일만 잘 하면 대리자리도 오고 과장 자리도 오고 차장자리도 온다. 하지만 조금 더 재미난 삶, 즐거운 삶은 누구에게나 오는 건 아닌 것 같다. 고작 10년 후면 촌스러워서 들고 다니지도 못할 고가의 명품 백을 구입하고 돈 좀 있는 척, 성공한 척 하느니 그 돈으로 조금 더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배낭여행도 한 번 더 했었더라면(지금은 몸이 힘들어서 여행을 가는데도 2배의 경비가 든다) 보다 넓은 견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영어공부 같은 것도 재밌어서 신나게 했을 것 같다. 맨날 학원 끊고 3일도 못가서 중도하차하던, 지루한 학원등록게임 같은 거 안하고 네이티브처럼 입이 훨훨 날지 않았을까. 그래도 여전히 글로벌 시대인 관계로, 현재 30대 중반에 다 굳어버린 머리로 영어 공부하려니 머리가 다 아프다.

연애도 그랬다. 그 때 만났던 소위 괜찮은 조건의 변호사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나의 욕망, 야심, 장점을 다 꼭꼭 숨기고 착한 척, 순한 면만을 부각했더니 그의 어머니가 혼수 비용 운운하시며 결혼하면 회사도 때려치우고 남편 월급 중 일부도 꼬박꼬박 보내라고 했다. 도대체 왜 나는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 그 마마보이에게 3년을 허송세월 했을까. 나를 얕잡아 보지 않을 남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남자, 나를 간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그런 남자 심지어 사회가 이야기하는 조건 좋은 남자도 내가 다울 때 나타난다. 까짓거 나이도 젊은데 뭐 어떤가, 유혹에도 흔들리고, 나쁜남자도 만나보고 그러면서 연애라는게 뭔지도 배우고, 남자라는 족속이 어떤지도 좀 미리 배우고, 그럴걸. 그걸 몰라 나는 서른 넘어 뒤늦게 바람나서 찌질한 루저 녀석들을 만나고 다녔다. 서른 넘어 방황하고 마음에 상처를 얻으면 회복이 늦다. 새살이 늦게 돋는다. 하지만 20대 때는 모든 것이 더 쉽다. 새살도 빨리 돋고, 경험한 만큼 깨달음도 크다.

그러니까 내 말은,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대가 당신을 먹여살려주지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10년 전이었다면 나는 보다 자유롭고 싶다. 그 자유와 젊음을 보다 누리면서 신나게 지냈을 것이다. 서른이 지나고 나서야 나 자신에게 솔직하자며 뛰어다니면 추해지는 것 같다. 마치 20대 대학생이 입을 법한 초미니스커트에 핑크 블러셔를 얼굴에 떡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 창피하게도 내가 그 미니스커트 핑크블러셔였다.  그러니 20대 때는 맘껏 자유로워도 된다. 그 이후 30, 어른이 되면 된다.



당신이 아직 20대라면, 아니, 30대 초반이라도 괜찮다. 하늘로 날아라 훨훨.

 

 



Posted by NYCbride